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은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입니다. 인간들의 집 안에 은신처를 만들고 물건들을 '빌려가며' 살아가는 이 소인 가족의 이야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사람들이 겪었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고, 실제로 읽다보면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몇 차례 영화와 텔레비전 물로 각색되었는데, 피터 휴이트가 감독한 97년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쓴 영화의 각본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배경입니다. 20세기 영국이 무대인 소설인데, 정작 영화의 무대는 21세기 현대 일본이지요. 이렇게 번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각본은 영화의 주인공인 클락 가족을 그대로 두고 있어요. 이들은 일본에 숨어 살고 있는 유럽계 가족인 겁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인들이 상상하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유럽계 가족이지요. 특히 과묵하고 멋없는 가부장인 아버지 팟은 그렇습니다. (휴이트 영화에서는 짐 브로드벤트가 이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지의 갭을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번안은 원작의 이야기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시골 저택에서 요양하며 수술을 기다리는 병약한 일본 소년 쇼와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하여간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니어처 유럽 소녀인 아리에티의 관계는 분명 원작과는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걸 그냥 무시해버려요. 클락 가족은 유럽에서 수입해온 작은 인형들처럼 그냥 일본식 서구취향의 반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형과는 달리 소인들은 보다 명확한 사연이 있어야 하기에, 전 이들의 이야기가 끝까지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기존 지브리 영화의 역동성을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소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몇몇 판타지 액션 장면들이 있긴 합니다만,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환상적으로 비상하는 이전 영화들의 에너지와 속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영화는 우울하고 가라앉아 있습니다. 유머도 부족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지브리의 각색자들은 앵글로 색슨 유머를 제대로 살리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단지 [하울]에서는 그를 보완할 에너지와 새 주제가 있었습니다. [아리에티]에는 그런 게 없어요.


여전히 [마루 밑 아리에티]는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눈에 특별히 걸리는 게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지브리의 미래를 읽기는 어려워요. 저에게 이 영화는 그냥 건실하게만 보입니다.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10/08/28)



기타등등

축소세계에서 물의 표면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했던 거겠죠. 그렇다고 모든 물리법칙이 다 정확하게 그려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감독: Hiromasa Yonebayashi, 출연: Ryûnosuke Kamiki, Kirin Kiki, Mirai Shida, Tomokazu Miura, Shinobu Ôtake, Keiko Takeshita, 다른 제목: The Borrowers


IMDb http://www.imdb.com/title/tt156892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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