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과 줄스는 20년 동안 같이 살아온 커플입니다. 닉은 산부인과 의사이고, 줄스는 전업주부와 다소 방향성 없는 짧은 직업들 사이를 방황해왔지요. 둘은 각자 낳은 아이들이 한 명씩 있는데, 딸인 조니는 막 대학입학을 앞둔 모범생이고, 아들인 레이저는 누나만큼 공부를 잘 하지는 못합니다. 자, 이제 이들 중 어느 쪽에 자신을 투영하느냐만 남았습니다. 그만큼 이 가족은 전형적이에요. 단지 닉과 줄스가 모두 여자라는 사실을 빼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여자라는 것은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 조건은 영화의 기본설정을 열어줍니다. 두 사람은 모두 같은 기증자로부터 정자를 받아 아기를 낳았는데, 애들이 자라니까 아빠가 누군지 궁금해진 것이죠. 결국 아이들은 엄마들 몰래 기증자를 알아내는데, 그는 근처 동네에서 식당을 하는 폴이라는 남자입니다. 여기서부터 나른하게 정체되어 있던 이들 가족의 역학관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엄격하고 모범적인 엄마 가장 닉의 지도하에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이들과 줄스가 폴의 헐렁한 매력에 빠져든 것이죠. 결국 줄스는 중반에 폴과 불륜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영화의 드라마는 구성원들을 흔들어놓고 재정립하는 전통적인 가족 드라마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폴의 무심한 등장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방식이 얼마나 안전하고 나른하기만 했는지를 드러내줍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이면 다들 그 방식이 그들을 지금까지 얼마나 잘 지탱해주었고 소중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지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신선할 정도로 보수적입니다. 하긴 대안 가정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특별히 다르게 살 거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생각이 아닙니까.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앙상블 위주의 영화이고, 그 틀 안에서 캐릭터와 배우들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장단점을 갖춘 복잡한 인물들이에요. 이들은 어느 한쪽을 옹호하지도 않고 단점을 억지로 끄집어내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드라마를 위해 일부러 완벽한 결말을 내지 않는 대신 살짝 열어두는데, 이 역시 자연스러워보입니다. 물론 전 줄스가 조금 더 반성하길 바랐지만 말입니다. 실생활에서 제가 늘 줄스처럼 대책없는 쪽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좋은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상황을 과장하는 대신 주어진 조건 하에서 절묘하게 리듬을 타는 부류지요. 대화와 액션을 구성하는 영화의 리듬감은 아주 좋은 편이라 실제 러닝타임보다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관계 속에서 소위 '정상'과 '비정상'을 뒤집고 흔드는 몇몇 농담들을 찾아내는데, 이들은 모두 일탈성보다는 정통성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단지 성적 지향성에 대한 영화의 접근법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성애자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줄스의 묘사에 커뮤니티 내의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전 줄스의 캐릭터가 양성애자라는 걸 영화가 받아들였다면 모든 게 훨씬 쉬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새는 단순한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걸 지나치게 복잡하게 푸는 것 같아요. (10/08/30)



기타등등

국내 제목이 싫습니다. 충분히 번역될 수 있는 문장을 꼭 저렇게 어설프게 바꾸어야 했는지.


감독: Lisa Cholodenko, 출연: Annette Bening, Julianne Moore, Mark Ruffalo, Mia Wasikowska, Josh Hutcher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84292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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