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 저주받은 사진 Gekijô-ban: Zero (2014)

2015.06.06 21:45

DJUNA 조회 수:4260


[령: 저주받은 사진]의 무대는 일본 시골 외딴 곳에 있는 가톨릭 기숙학교. 시대배경은 원작 게임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없는 80년대가 아닌가했지만 중간에 갑자기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오디션 동영상을 보내는 아이돌 지망생이 나오는 걸 보면 아니겠죠. 하지만 80년대여도 비현실적인 곳임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 영화의 학교는 현실세계에서는 그냥 존재할 수 없는 곳이에요.

영화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건 아야라는 3학년생인데 언젠가부터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화장실이 딸린 독방을 쓰는, 곧 졸업을 앞둔 학생이 문을 잠그고 며칠 째 안에서 버티고 있는데 선생들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곳인 거죠. 이 정도면 이 영화의 리얼리즘과 논리의 수준이 이해되실 거라 믿습니다.

하여간 아야가 방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학교에서는 여러 호러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아야의 환영이 나타나 저주를 풀어달라고 간청하거나, 아야의 사진에 키스한 아이가 사라졌다가 시체로 발견되거나 그러는 거죠. 그러다 두 번째 주인공인 미치가 아야와 관련된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기 시작하는데... 줄거리 요약은 여기서 그치는 게 좋겠습니다.

철저하게 일본 호러 장르의 관습을 따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모든 일들은 이전에 나온 수많은 장르물들이 그래도 된다는 허가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어납니다. 심리 묘사, 캐릭터 설정 같은 건 처음부터 없습니다. 일관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는 소소한 야심도 없습니다. 그냥 흔한 재료들의 공허한 조합일뿐이에요. 너무 공허해서 초월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죠. 이게 뭔가 근사한 말처럼 들린다면 그건 제 실수입니다. 그 공허함이 특별히 재미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냥 모든 게 성의없게 느껴질뿐입니다.

이 공허함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학생들의 묘사입니다. 이들은 모두 실제 여자아이들에게서 더러움, 생명력, 감정, 요망... 하여간 사람을 만드는 모든 것들을 박박 밀어 지워내서 만든 '영화 속 소녀들'이에요. 너무 깔끔하게 청소를 해서 살아 숨쉬면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죠. 이 영화에서 그들이 하는 가장 설득력있는 행동은 기절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전 비현실적인 배경도 좋아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도 좋아합니다만 이들로 영화를 만들려면 최소한 이들이 스스로의 논리와 욕망과 사고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호러 대신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로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로맨스는 욕망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죠. 하지만 이 영화 속 '소녀들의 사랑'은 그냥 게임 규칙에 불과합니다. 어떤 감정도 없이 오로지 예쁨만이 있는, 다시 말해 '백합'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예입니다. 아야와 미치가 사건을 파헤치는 후반부가 설득력이 없는 것도 이들에게서 어떤 인간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냥 교복입은 젊은 여성의 모습을 흉내낸 유원지 로봇같은 존재들이에요. 예쁜 배우의 얼굴만 뜯어먹고도 두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관객들이라면 모를까, 저로서는 추천하기 어렵군요. (15/06/06)

★☆

기타등등
사영기 안 나와요. 귀신 찍는다고 카메라 들고 다니는 꼬마가 의미없는 단역으로 등장하긴 합니다만. 여자애들이 주인공이고 사진이 나온다고 게임 원작이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감독: Mari Asato, 배우: Aoi Morikawa, Ayami Nakajô, Kôdai Asaka, Minori Hagiwara, Fujiko Kojima, 다른 제목: Fatal Frame

IMDb http://www.imdb.com/title/tt36844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9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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