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옛날 영화네요. 배뚱뚱이 네모난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에서 하는 걸 봤었지요. 하지만 영화 자체보다는 FM 영화음악 프로그램에서 죽어라고 틀어주었던 주제곡 "Windmills of Your Mind" 때문에 더 향수돋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영상자료원에서 해주어서 봤어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명화극장]에서 틀어주었을 때도 그렇게 재미있게 봤었나?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도입부의 범죄 장면에서 조금 흥분했던 기억이 나긴 해요.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범죄자들을 따로 고용해서 시계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은행털이 작전을 실행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좋았죠.

다시 보니 토마스 크라운의 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계획이 드러나는 후반부에 누군가가 배신할 수도 있고, 신문광고로 공범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뒤처리도 엉망이었고요. 그의 계획대로 잘 풀리지도 않아서 엉뚱한 사람이 다치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이미 4백만 달러나 갖고 있는 녀석이 순전히 심심해서 2백만 달러를 훔치고 납세자의 세금으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일반 시민을 괴롭히는 게 영 짜증이 났습니다. 직업 범죄자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는데, 토마스 크라운은 그것도 아니란 말이죠.

보험회사가 고용한 비키 앤더슨이 사건을 수사하는 부분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죠. 2백만 달러를 훔친 강도가 당연히 스위스 은행을 이용할 거라는 추리는 왜 그렇게 확실한 거랍니까? 영화에서는 맞아 떨어졌지만 그건 순전히 운이었죠. 토마스 크라운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도 순전히 운이고.

그 뒤에 비키 앤더슨과 토마스 크라운이 하는 짓은 순전히 그림용입니다. 수사도 아니고 연애도 아닙니다. 아무리 서로에 몸이 달았다고 해도 두 사람의 행동은 동기도 흐릿하고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돈많은 60년대 사람들이 어떻게 취미생활을 하는지 보여줄 뿐이죠. 쟁쟁한 스타가 멋진 옷을 입고 그림이 되는 일을 하긴 하지만 제가 그걸 즐겁게 봐야 할 이유는 없지요. 내용이 없어도 공감대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따라가죠. 화면 분할과 같은 테크닉도 드 팔마의 영화와는 달리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고요. 좋은 재료로 예쁘게 만들었는데, 딱 거기서 멈춘 영화입니다.

그래도 호감이 가는 건 미셸 르그랑의 음악입니다. "Windmills of Your Mind"도 좋지만 60년대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화 음악 전체가 좋더군요. 옛날 음악 티가 풀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참 곱게 낡았습니다. (14/09/23)

★★☆

기타등등
피어스 브로스넌, 르네 루소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전 안 봤습니다. 생각해보니 내용은 더 나았을 수도 있었겠군요.


감독: Norman Jewison, 배우: Steve McQueen, Faye Dunaway, Paul Burke, Jack Weston, Biff McGuire, Addison Powell, Astrid Heeren, Gordon Pinsent, Yaphet Kotto, 다른 제목: 화려한 패배자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368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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