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디언 경감 Gideon’s Day (1958)

2014.10.02 21:22

DJUNA 조회 수:3242


엄청나게 부지런했던 영국 작가 존 크리시는 J. J. 매릭이라는 필명으로 조지 기디언이라는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소설을 썼습니다. 모두 [Gideon's 어쩌구]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들은 사후에도 윌리엄 비비언 버틀러라는 작가에 의해 9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근데 여기서 사후는 조금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단어입니다. 작가는 73년에 죽었는데 75년과 76년에 각각 한 편씩 더 나왔으니까요. 앞에서 말했잖아요. 엄청 부지런한 작가였다고. 평생 6백권이 넘는 장편을 썼대요. 그 중 제가 읽은 건 [기데온과 방화마]라는 제목으로 동서추리문고에서 나온 [Gideon's Fire] 하나입니다.

기디언 시리즈는 경찰소설의 서브장르에 속합니다. 추리보다는 경찰업무의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한 작품이죠. 기디언 역시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명탐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스코틀랜드 야드 고위직인 그는 사건을 직접 수사하는 대신 사건을 맡은 부하들을 관리하고 이끄는 편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는 대신 여러 개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지요.

존 포드의 [기디언 경감]은 기디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Gideon's Day]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영국에서는 그냥 [Gideon's Day]라고 소개되었지만 미국에서는 [Gideon of Scotland Yard]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판은 흑백으로 개봉되었고 엄청 잘렸다고 하더군요.

영화는 기디언이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를 그리는데, 그 날은 그에게 유달리 바쁜 날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게 일상이라면 그의 몸과 정신이 감당하지 못할테니까요. 그 하루 동안 기디언은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맡습니다.

부패한 경찰 사건
그 경찰을 치고 달아난 뺑소니 사건
여자들만 살해하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사건
봉급 강도 사건
은행 강도 사건

원래 기디언 시리즈는 이 정도 사건들을 동시에 다루지만 그 날이 특별한 이유는 이것들이 용하게도 그날 하루 동안 어떻게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쁘지만 생산적인 하루죠. 하지만 그는 딸의 콘서트에 참가하고 저녁식사용 생선을 사온다는 가족의 임무엔 계속 실패합니다. 출근 때 풋내기 경관에게 딱지도 끊기고 증인으로 가야 하는 법정엔 지각하고 퇴근하려는 그를 발목 잡는 일이 계속 생겨서 고생도 많지요.

생각보다는 발랄한 영화입니다. 특히 거의 가족 코미디처럼 시작하는 도입부는 당황스러웠죠. 궁금해서 원작의 일부를 인터넷으로 확인해봤는데, 영화의 유머 상당부분은 기디언을 평범한 직장인이며 가장인 중년남자로 그리기 위해 일부러 넣은 것 같습니다.

[기디언 경감]을 보는 현대 관객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50년대 스타일의 리얼리즘일 거 같습니다. 영화는 원작을 따라 최대한 사실적인 경찰 이야기를 그리려 하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양식적으로 보이죠. 그 동안 당시엔 [로앤오더] 스타일의 사실적인 이야기였던 것이 순진했던 옛 영국의 이야기가 되었고요. 이 변신과정이 영화에 득이 되었는지, 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전자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영국 배우들을 데리고 영국에서 찍은 현대 영국 배경의 존 포드 영화라니 희귀한 종자죠. 이런 부류로는 유일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포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포드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분석하기는 여러 모로 까다로운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포드보다는 크리시/매릭의 개성이 크고 감독보다는 기디언을 연기한 잭 호킨스의 존재감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영화니까요. 당연히 마이너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이 희귀한 구경거리를 놓치면 아쉽지 않겠습니까. (14/10/02)

★★★

기타등등
영화에서 기디언은 Detective Chief Inspector입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Superintendent죠. Superintendent 쪽이 더 높습니다. 영화에서도 Superintendent처럼 행동하고요. 왜 강등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관객들에게 Detective Chief Inspector가 더 친숙할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감독: John Ford, 배우: Jack Hawkins, Anna Lee, Anna Massey, Andrew Ray, Howard Marion-Crawford, John Loder, Barry Keegan, Frank Lawton, Michael Trubshawe, 다른 제목: Gideon of Scotland Yard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165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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