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37 (2017)

2017.11.08 14:15

DJUNA 조회 수:5435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신연식 [로마서 8:37]은 대놓고 만든 노골적인 기독교 영화입니다. 단지 전도영화나 기독교 변론물은 아니에요. 기독교도 관객들을 우선으로 놓고 만든 기독교인들에 대한 영화지요. 믿음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세계관을 믿는 사람들의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한 그 사람들의 대응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속 사람들에겐 이 내부의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바깥 사람들을 설득할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배경이 되는 교회의 사정은 익숙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형교회가 내전 중입니다. 한쪽은 늙은 목사가 이끄는 부패한 보수파이고 다른 한쪽은 그래도 좀 깨끗해 보이는 젊은 스타 목사가 이끌고 있죠. 주인공인 전도사 기섭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우상이었던 젊은 목사 요섭을 돕기 위해 교회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요섭에겐 기섭이 몰랐던 어두운 면이 있었단 말이죠. 그게 뭘까요. 아까 이 영화의 배경이 익숙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잖아요. 요섭에게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여자신도들의 진술이 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로마서 8:37]은 몇 가지 층으로 기능하는 영화입니다. 첫 번째 층에서 영화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에게 뼈를 깎는 처절한 자기 반성을 요구합니다. 두 번째 층에서는 성폭행과 같은 범죄가 교회와 같은 종교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은폐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세 번째 층에서는 개신교 신앙이라는 공통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고요.

당연히 영화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건 첫 번째 층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두 번째 층과 세 번째 층에서도 정직하고 꼼꼼하기 때문에 굳이 관객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여전히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부인만이 제공해줄 수 있는 인류학적 정보량이 상당히 많아요. 그 정보에 바탕을 둔 캐릭터들 역시 그 안에서 생생하고요.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필요 이상의 변호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종교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냉소적인 반기독교적 텍스트로도 읽을 수 있죠. 의도는 당연히 아니지만 창작자의 의도가 그렇게까지 중요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부패한 교회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기섭은 우리가 감정이입해야 할 인물이지만 전 그와 그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영화에 대해 계속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는 선한 인물이고 최대한 옳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지만 과연 그의 행동이 최선인가요? 이런 이야기 속에서 그가 주인공이 되는 게 과연 옳을까요? 이런 사건이 과연 개신교 교회 안에서 기독교의 믿음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신연식은 영화 속 사건을 한국적인 특이현상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 같지만 문화적 차이만 있을 뿐 교회 내 범죄는 어딜 가도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던가요? 과연 종교 자체는 진짜 문제가 아닌 걸까요? (17/11/08)

★★★

기타등등
보면서 '이 영화도 참 조폭영화구나'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더군요. 양복 입은 조폭과 검찰 대신 양복 입은 목사와 장로들이 나오는. 이 땅에서 조폭스러움은 탈출할 수 없는 늪인가 봅니다.


감독: 신연식, 배우: 이현호, 서동갑, 이지민, 조성우, 허연정, 홍성춘, 박명신, 전경수, 다른 제목: Romans 8:37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Romans_8_2p_37.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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