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

2012.12.09 20:48

DJUNA 조회 수:16169


주먹왕 랄프는 [다고쳐 펠릭스]라는 30년 먹은 게임기의 악당입니다. 랄프가 화를 내며 집의 창문을 부수면, 주인공 펠릭스는 마술 망치로 창문을 고쳐요. [동키 콩]과 비슷한 스타일의 8비트 게임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랄프는 이런 게 싫습니다. 하긴 랄프는 최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진짜 악당이라면 차라리 스트레스는 없을 텐데, 그는 그냥 악당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거든요, 그렇다고 악역 배우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죠. 악당도 아니면서 30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으며 쓰레기장에서 살면 저라도 짜증이 날 겁니다.

랄프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합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게임 밖으로 나가 오락실의 다른 게임으로 들어가 메달을 따서 [다고쳐 펠릭스] 게임의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히어로스 듀티]라는 슈팅 게임에 들어가 간신히 메달을 하나 따는데, 그만 사고로 이웃에 있는 카트 레이싱 게임인 [슈가 러시]에 불시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그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캐릭터인 바닐로피를 만납니다. 바닐로피의 소원은 랄프와 비슷합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금지되어 있는 카트 레이싱 게임에 출전해서 우승하는 것이죠.

[주먹왕 랄프]의 아이디어가 엄청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영화는 오락실을 무대로 하는 [토이 스토리]입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장난감이나 기타 등등의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은 거의 공식적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이디어가 아무리 전통적이라도 무대가 새로우면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새로움이란 건 창의적인 것이라기보다 아메리카 대륙처럼 누군가 언젠가 발견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새로움이지만요. 

설정을 최대한으로 살린다면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총동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어로스 듀티]를 벗어나면 랄프는 [슈가 러시] 안에서 머뭅니다. 이 뒤에 벌어지는 이야기도 전통적. 그냥 이런 식의 기성품 왕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흔한 일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전 이야기를 푸는 방식에서 [오즈] 시리즈도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지탱하는 것은 랄프와 비넬로피의 캐릭터입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악역이라 멸시받는 덩치와 버그가 있다고 따돌림 당하는 꼬맹이가 뭉쳐서 어설프게나마 뭔가를 입증하려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전 그냥 찡해지더란 말입니다.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됩니다. 

애니메이션 장르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영화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잡고 안전하게 가는 영화니까요. 이야기는 종종 너무 쉽게 가서 심심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쉽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멋진 캐릭터와 게임광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꼼꼼한 농담들, 그리고 그들을 멋들어지게 구현해낸 일급 CG 애니메이션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기성품적 매력에 대해 굳이 냉소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지요.   (12/12/09) 

★★★

기타등등
감독은 벌써 속편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음 영화는 콘솔 게임이 소재일 수도 있다고요.

감독: Rich Moore, 배우: John C. Reilly, Sarah Silverman, Jack McBrayer, Jane Lynch, Alan Tudyk, Mindy Kaling, Joe Lo Truglio, Ed O'Neill, Dennis Haysbert

IMDb http://www.imdb.com/title/tt177234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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