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이혼 전문 변호사 아내와 두 아이를 둔 40대 초반의 가정주부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일이 없는 건 아니에요. 파트너인 저스틴과 함께 아파트를 싸게 사들여 인테리어 디자인을 다시 한 다음 되파는 일을 하고 있지요.

평범했던 애비의 인생은 아들이 던진 야구공에 맞아 뇌진탕을 일으킨 뒤로 갑자기 변합니다. 정확히 그게 뇌진탕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며칠 뒤 애비는 처음으로 광고를 보고 성매매 여성을 찾아갑니다. 경험은 끔찍했지만 다행히도 발이 넓은 저스틴이 '더 나은' 직업여성을 소개시켜주죠. 그 뒤로 애비는 수리 중인 아파트에서 엘레노어라는 이름으로 여자 손님 대상 성매매를 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스테이시 패슨의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은 현대 미국 중산층 배경의 [세브린느]인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세브린느]가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성적 경험의 백일몽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애비/엘레노어의 노선은 훨씬 친밀하고 실용적입니다. 단지 섹스만을 제공해주는 대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고 심지어 인생 조언까지 해주죠. 몇몇 사람들에게는 거의 상담가에 가까울 정도. 엘레노어의 고객들도 성적 경험의 다양성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그래픽 위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엘레노어의 새 직업이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요.

많이들 이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섹스신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섹스신과 비교합니다. 주로 '현실적인 동성애 묘사'의 사례로 들기 위해서죠. 하지만 전 그런 식의 비교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다른 영화니까요. [블루]의 주인공이야 막 관계를 시작한 젊은이들이니 조금 무리할 수도 있죠. 하지만 애비 정도의 나이와 경험이면 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택하기 마련이니까요.

영화에서 가장 도전적이라고 볼 수 있는 건 동성애를 거의 이슈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것보다는 결혼생활이 권태기에 접어든 40대 뉴저지 가정주부라는 것이 더 중요하죠. 애비의 고민은 여전히 보편적입니다. 물론 이슈화되지 않을 뿐, 동성애가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엘레노어가 여자손님들을 받는 순간부터 영화는 [세브린느]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손님과의 관계도 다르고 그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도 다릅니다. 심지어 동성애가 아무 이슈도 아닌 척하는 무표정한 태도 자체도 아직은 덤덤한 유머의 일부입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애비 역의 배우 로빈 웨이거트가 있습니다. 언제나 모나리자처럼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배우의 담담한 얼굴엔 참 많은 것이 들어가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온갖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애매모호함이 깔려 있는데, 이게 애비의 캐릭터나 상황과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것이죠.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영화 자체가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만. (14/06/03)

★★★

기타등등
[Concussion]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팔기 어렵다고 생각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은 좀 뜬금없습니다.


감독: Stacie Passon, 출연: Robin Weigert, Julie Fain Lawrence, Maren Shapero, Micah Shapero, Janel Moloney, Funda Duval, Claudine Ohayon, Jane Peterson, Maggie Siff, Johnathan Tchaikovsky, Francesca Castagnoli

IMDb http://www.imdb.com/title/tt229669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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