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다르 랴자노프의 [잔혹한 사랑 이야기]는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의 희곡 [지참금이 없는 여인]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코미디 전문가인 랴자노프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예외적인 작품이죠. 그래도 개봉 당시 인기는 엄청 좋았다고 하고 극영화치고는 조금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노래들은 지금도 인기있다고 합니다.

심란한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유럽 여자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위치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예요. 주인공 라리사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자와의 결혼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한참 썸타고 있던 방탕한 귀족 파라토프는 중간에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청혼한 은행장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었네요. 결국 지쳐버린 라리사는 자기에게 처음 청혼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하는데 운좋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우체국 직원인 카란디셰프였던 거죠. 하지만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졌던 파라토프가 나타납니다.

이야기꾼이 작정한다면 이 이야기는 코미디로 흘러갈 수도 있지요. 하지만 라리사에겐 그런 운이 없습니다. 라리사 주변의 남자들은 불쾌하고 끔찍한 남자들이에요. 라리사가 속해 있는 세계 역시 로맨틱한 도피를 허용할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고. 게다가 작가도 성격이 고약해서 라리사의 선택은 늘 최악입니다. 험악한 세상에 살면서 가진 것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의 질이 안 좋고 운까지 나빠요. 나쁜 작가.

랴자노프의 영화는 오스트롭스키의 원작을 각색한 두 번째 영화입니다. 첫 번째 영화는 1930년대에 나왔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DVD에 일부 장면이 부록으로 들어 있어요. 그 장면만으로는 많은 걸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랴자노프의 영화보다는 로맨틱할 거라고 생각해요. 랴자노프의 영화는 건조하고 냉담하기 짝이 없거든요. 그가 코미디 전문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조금의 판타지도, 착각도 허용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보다 호사스럽게 꾸미려면 파라토프를 로맨틱하게 꾸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해요. 30년대 영화는 정말로 그랬던 거 같고요. 하지만 그가 니키타 미할코프를 캐스팅해서 만들어낸 파라토프는 척 봐도 믿을 수 없는 건달이거든요. 라리사야 이야기 속에 있으니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어도 관객들은 절대로 안 속지요.

볼가강 주변의 로케이션이나 라리사를 연기한 라리사 구제바는 정말 아름답지만, 이 영화에서 로맨틱한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마세요. 심지어 [잔혹한 로맨스]라는 제목도 어느 정도 미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결국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돈과 계급이고 로맨스는 이들이 걸치고 있는 허술한 위장에 불과하니까. (15/04/29)

★★★☆

기타등등
랴자노프의 전작 [오피스 로맨스]의 두 주연배우들이 이 영화에도 나와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미야코프가 사랑에 빠진 건 프레인들릭의 딸이죠.


감독: Eldar Ryazanov, 배우: Alisa Freyndlikh, Larisa Guzeeva, Nikita Mikhalkov, Andrey Myagkov, Aleksey Petrenko, Viktor Proskurin, Georgiy Burkov, Tatyana Pankova, 다른 제목: A Cruel Romance

IMDb http://www.imdb.com/title/tt009036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6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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