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타블로 Le tableau (2011)

2012.11.11 23:43

DJUNA 조회 수:7859


[르 타블로]의 무대는 20세기 초중반의 스타일로 그려진 화려한 색조의 풍경화입니다. 앞에는 숲이 있고 멀리 뒤에는 성이 하나 있어요. 숲 어딘가에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보이고요. 그리고 이 그림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몇몇 부분의 채색이 덜 되어있고 어느 부분은 스케치의 형태로만 남아있어요.  

화가가 떠난 뒤로 이 아름다운 그림은 끔찍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던 계급사회가 된 것이죠. 꼭대기에는 완성품들이 있고, 중간에는 부분적으로 채색이 덜 된 미완성작들이 있고, 바닥에는 스케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숲 안에 그려진 두 연인 중 한 명인 클레르는 얼굴에 채색이 되지 않은 미완성작입니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클레르의 완성품 남자친구인 라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은 모딜리아니 풍의 우울한 미인인 클레르가 아니라 클레르의 활발한 친구인 롤라입니다. 이 두 사람과 깃털이라는 이름의 스케치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림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아냅니다. 이들은 창조주인 화가에게 책임을 묻고 세계를 완성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화가가 그린 여러 그림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르 타블로]는 2D인 척하는 3D 컴퓨터 그래픽 영화입니다. 아주 회화적이지만 3D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일반적인 셀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섬세한 색조 변화를 다루지 못하니까요. 만약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렸다면 이 영화의 이미지는 훨씬 단조로웠겠죠.

어떤 기술을 썼건, [르 타블로]는 시각적인 성찬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상상해왔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판타지를 가장 확실하게 구현한 작품이지요. 단순히 예쁜 그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자신의 시각적인 상상력과 감정을 그대로 투여한 한 사람의 정신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까지도 줍니다.

이 환상적인 여행 뒤에는 심각한 철학적 사유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 그것의 상징으로 존재하는 예술가와 예술품의 관계. 여기엔 계급 혁명의 이야기도 있고,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 반전주의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그렇게 새롭거나 깊다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 넣은 이야기 역시 그렇게 생기발랄하다고 할 수 없고요. 하지만 이들이 이미지와 함께 결합되면 그 결과물은 상당합니다. 일단 무엇보다 참 아름다우니까요.

이야기에 동기를 불어넣어주는 계급 혁명 이야기는 비교적 싱겁게 끝나는 편입니다. 이런 가족 영화에서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테니 이건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영화는 라모나 클레르와는 달리 혁명으로부터도, 로맨스로부터도 독립적인 여자주인공 롤라를 통해 또 하나의 멋진 결말을 보여줍니다. 대부분 관객들은 이미 그 이야기와 의미를 예측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라의 이야기는 강렬한 우주적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전 이런 이야기와 이런 인물에 정말 약하지요. (12/11/11)

★★★☆

기타등등
원래 올해 전주에서 볼 계획이었는데 실패했었답니다. 다행히도 올해 PISAF에서 하더군요. 저에겐 내년 여름에 할 PIFAN의 예고편과 같은 행사였습니다. 7호선이 연장되면서 그 동네 교통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아세요? 

감독: Jean-François Laguionie, 출연: Jessica Monceau, Adrien Larmande, Thierry Jahn, Julien Bouanich, Céline Ronte, Thomas Sagols, Magali Rosenzweig, Chloé Berthier, 다른 제목: The Paint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189176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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