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1985 (2012)

2012.11.07 23:51

DJUNA 조회 수:16013


[남영동1985]는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던 사건을 극화한 것입니다.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을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김근태와 이근안의 이름은 김종태와 이두한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그려진 드라마와 인물 상당수는 허구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건 자체는 그대로 있죠. 

감추는 것 하나 없이 단순한 영화입니다. 김종태는 부당하게 남영동으로 끌려가 이두한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식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정말로 나쁜 일이었으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 단순한 이야기를 꼼꼼한 디테일을 통해 재현한 것이 영화 내용의 전부입니다. 

[부러진 화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지영은 우직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이 이야기를 몰고 갑니다. 요새 사람들의 스타일을 따라 세련된 영화를 만들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이전의 스타일을 고수할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가장 정직한 태도로 주어진 소재를 충실하게 다루는 것 이상은 원치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물론 대사나 캐릭터 묘사와 같은 것은 옛날 티가 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강한 스토리텔링의 힘이 있습니다.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한 실화를 순서대로 늘어놓고 있는데도 이 영화의 이야기에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보고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의 재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관심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할 수는 있지요. 

잔인한 내용이지만 요새 유행하는 고문 포르노를 상상하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그런 수준의 묘사가 나올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일단 당시 고문전문가들은 피해자에게 오래 남는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리적 고문, 그러니까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은 그럭저럭 견디면서 볼 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끔찍한 건 고문 자체보다는 김종태를 고문하는 남영동 대공분실 VIP실 전문가들의 묘사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악한 악당이 아니라 정부라는 시스템 속에서 양심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채 기계적으로 주어진 일을 반복하는 평범하고 상상력 부족한 종자들입니다. 고문 자체보다는 이 반쯤 망가진 존재들이 자신의 평범함과 정상성을 당연한 것처럼 걸치고 다니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걸 보는 건 진짜로 견디기 힘듭니다. 이 영화의 공포가 지금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적어도 우리가 알기로는 영화에서 그려진 고문은 더이상 행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런 고문을 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부류들은 여전히 버티고 있죠.

많이들 [남영동1985]가 정지영 최고의 걸작이라고 합니다. 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전 이 영화가 어떤 종류의 걸작이라는 생각도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정확하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힘있는 영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국가 보안법이 여전히 남아 있고 현대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지금, 영화의 정치적 의미도 만만치 않게 크지요. 이 기능성만 계산해도 [남영동1985]는 만만치 않은 영화로 남습니다.  (12/11/07) 

★★★☆

기타등등
별다른 법적 문제도 없으니, 이름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하지만 정지영은 이 이야기를 김근태/이근안의 실화에서 꺼내 당시 모든 고문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 이경영, 명계남, 김의성, 서동수, 이천희, 김중기, 문성근, 우희진,  다른 제목: National Security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National_Security.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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