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잭슨과 번개도둑]. 제목만 들어도 이 영화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을 따르고자 제작된 아류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릭 라이던의 소설도 마찬가지겠죠.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셜록 홈즈 소설들이 히트쳤을 무렵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러다가 원조만큼 재미있거나 원조를 능가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도 있는 거죠. 다 성의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에서 그 성의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퍼시 잭슨]의 도입부는 거의 비겁할 정도로 [해리 포터] 전통에 충실합니다. 한 번 내용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린 루저(영화를 위해 나이를 조금 올렸다고 합니다만)인 주인공은 알고 봤더니 엄청난 출생의 비밀과 재능을 가진 영웅입니다. 그는 평범한 세상을 떠나 그와 비슷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특별한 학교에 보내집니다. 그는 거기서 친구 두 명을 사귀는데, 하나는 웃기는 남자애이고 다른 하나는 모범생인 여자애입니다. 그러다 이들은 추리소설과 같은 미스터리에 말려들고 막판에 뜻밖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초반이야 이런 영웅담의 공식이라고 쳐도 여기까지 닮으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퍼시 잭슨]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현대 미국 문화의 결합이지요. 퍼시 잭슨은 포세이돈과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갓입니다. 포세이돈, 제우스, 아테나, 하데스와 같은 익숙한 신들이 등장해 싸움을 벌이고 '캠프'에는 그들의 자식들이 부글거립니다. 올림푸스 산으로 올라가고 싶다고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됩니다.

 

미안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어렵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상의 단계를 넘어서면 새로운 것은 거의 없습니다. [퍼시 잭슨]의 세계는 그냥 그리스 신화에 종속됩니다. 등장하는 신들이나 괴물들, 소도구들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들이죠. 여기엔 영화 고유의 발명품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삽입된 장치들은 더 안 좋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신화와 같은 '고전 문화'를 친숙하게 하기 위해 현대 일상어와 농담, 대중문화인용들을 섞어 재치를 부리는데, 세상에 이처럼 진부한 장치가 또 있습니까. 더 나쁜 건 그들이 거의 모든 대사에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싹터오를 수 있는 진짜 감정들이 날아가버리는 건 당연한 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올림푸스 산으로 가는 입구이고, 멤피스에 있는 가짜 파르테논 신전이 진짜를 대체하는 식의 장난도 좋지 않습니다. 모든 게 지나칠 정도로 라스베가스식이에요. 영화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럭저럭 자기만의 이야기를 쌓을 수 있었던 중반 이후의 모험도 거의 자동비행처럼 운행됩니다. 퍼시 잭슨은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는 저승으로 가서 하데스와 맞서는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도와주는 세 개의 진주 구슬을 얻어야 하고, 그것은 미국 이곳 저곳에 진행을 막는 괴물들과 함께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드라마의 논리가 아닙니다. 비디오 게임의 논리죠.

 

그래도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이야기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그렇듯 술렁술렁 잘 넘어가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그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기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고, 특수효과를 잔뜩 써 만든 세상에서 술렁술렁 넘어가는 그 이야기에는 진짜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J.K. 롤링이 얼마나 뛰어난 발명가이고 스토리텔러이고 유머리스트인지 뼈저리게 느꼈던 것입니다. (10/02/05)

 

★★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캠프'는 미국식 군사학교를 연상시키더군요. 호그와트와는 달리 지겹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저 같으면 애들을 그런 데에 보내지 않아요. 거기서 애들이 도대체 뭘 배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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