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2016)

2017.03.04 21:51

DJUNA 조회 수:3693


조재민의 [눈발]은 대한민국 고등학교가 배경인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청소년 학대극입니다. 당연히 전 고통받을 걸 각오하고 갔고 실제로 고통받고 왔어요. 다행히도 영화의 러닝타임은 러닝타임까지 포함해서 91분으로 짧은 편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몇 년 전에 나온 최진성의 [소녀]와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저번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지방으로 내려온 남자아이, 그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여자아이, 그리고 가축 전염병. 이 유사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민식은 부모와 함께 고성으로 내려옵니다. 민식은 전에 살던 수원에서 사고를 하나 심하게 친 모양인데 그게 뭐였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민식이 다니는 학교엔 따돌림당하는 예주라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예주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일어난 어린아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였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났기 때문이죠. 물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예주의 아버지가 진짜로 살인자인지는 밝혀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예주에게 가해지는 집단따돌림까지 면제해주지는 못합니다.

종교영화는 아니지만 기독교에 대한, 기독교적인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민식이 아버지가 교회 목사이고 교회는 영화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합니다. 예주의 캐릭터 역시 기독교적으로 존재를 설명할 수 있겠지요. 천사의 날개와 같은 종교적 상징들이 비중있게 등장하기도 하고요. 단지 영화에서 종교는 구원을 열어주지 못합니다. 이 영화 속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결코 땅 위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는 동안 이들 죄인들을 심판하려는 것처럼 구제역이 고성을 향해 서서히 내려오고 있지요.

고통의 정도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한다면 [소녀]보다는 강도가 높고 [한공주]와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될까요. 단지 [한공주]엔 끔찍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지만 주인공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따뜻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잖아요. [눈발]은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겁하고 잔인하고 찌질합니다. 어린아이가 죽었고 살인자가 처벌 받지 않았으니 그들이 복수의 대상을 찾고 있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잔인함과 비겁함이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니죠.

남자주인공 민석도 여기서 예외는 아닙니다. 민석은 그나마 예주에게 친구로 다가가는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영화는 그 비겁함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전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현대 한국 서사예술에서 찌질한 남자 주인공의 자기 고백과 반성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하고 있고, 그 자체가 이야기꾼의 권력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전 영화가 민석의 자기고백보다는 예주의 고통과 갈등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예주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고 만족스럽지만. (17/03/04)

★★★

기타등등
영화 보기 전엔 염소의 운명이 진짜로 걱정되었었죠. 고맙게도 최악은 아니었어요.


감독: 조재민, 배우: 박진영, 지우, 신안진, 정나온, 장명갑, 김기주, 이태준, 이찬희, 다른 제목: A Stray Goat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A_Stray_Goat.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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