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괴담 (2014)

2014.06.20 00:31

DJUNA 조회 수:9353


[소녀괴담]은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인 고스트픽처스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전 좀 기대를 했어요. 첫 번째 영화인 [두 개의 달]이 그렇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디어가 괜찮고 장르 활용도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나름 호러 전문가들이 뭉친 팀이니 첫 번째 영화에서 교훈을 얻어 발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걸작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영화는 나올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소녀괴담]은 심지어 [두 개의 달]에 비교해도 여러 모로 퇴보한 영화입니다.

식상하기 짝이 없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나는 귀신이 보여요' 소년이죠. 주인공 인수가 바로 그런데, 미국에서도, 서울에서도 자꾸 귀신을 보니까 귀찮아서 삼촌이 사는 강원도 고향 마을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한 첫날부터 예쁜 교복 귀신이 자길 보고 있고, 학교에 온 첫 날엔 마스크를 쓴 소녀 귀신이 교실 안을 째려보고 있습니다. 인수는 둘 다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기억상실증을 앓는 교복 귀신과는 친구가 되고, 마스크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모험에 뛰어듭니다.

영화는 이 설정이 대단하게 신선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원한 귀신이 나오는 지하철 장면부터 이게 관객과 인수 자신에게 진부하기 짝이 없는 반복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지요. 허당 퇴마사 삼촌으로 나오는 김정태가 등장한 뒤부터는 적당히 코미디도 들어가고요. 이 정도면 인수가 태평하게 귀신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사용되는 호러 영화 공식들이 모두 진부해져서 오히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영화는 이 기회를 이용합니다. [소녀괴담]은 이 재료들로 갈 수 있는 온갖 곳들을 다 가는 영화입니다. 소녀 귀신 이야기는 청춘 로맨스, 마스크 귀신 이야기는 학교 내 폭력과 집단 따돌림을 다룬 [여고괴담] 스타일의 호러, 삼촌과 조카, 긴머리 처녀귀신이 나오는 부분은 초자연현상을 그린 코미디죠. 그밖에도 다른 장르들이 조금씩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합니다. 우선 코미디엔 내용이 없어요. 김정태가 뭔가 열심히 하긴 하는데, 모두 '나는 퇴마사인데 좀 웃긴다'에서 머무르고 끝이에요. 로맨스 파트에서는 여자주인공이 한국 십대 남자애의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게 너무 노골적이라 오글거리고 역시 발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너무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시퀀스로 넘어갈 때마다 영화 전체가 덜컹거립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어야 할 호러 파트 역시 힘이 없습니다. 머리칼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끝도 없이 보았던 긴 머리 귀신의 평범한 변주인 거죠. 귀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약간의 미스터리가 발생하긴 하지만 이 역시 한 줄의 설명으로 해결됩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제발 감추어 달라고 부탁했던 반전은 보도자료만 꼼꼼하게 읽어도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거고요. 무엇보다 심각하기 짝이 없는 학교 폭력의 메시지가 이야기를 오히려 실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르물이 꼭 새로울 필요는 없지만 이건 그냥 익숙한 재료를 능숙하게 쓰는 수준이 아니에요. 재료나 테크닉 모두에 심한 열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주제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캐스팅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주인공 강하늘은 괜찮아요. 기껏해야 무난한 게 장점인 캐릭터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망가지지 않지요. 김소은도 기본은 나쁘지는 않은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한심하게 '예쁜 척'을 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배우가 무척 민망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캐리커처인데, 그것도 중간에 맥없이 무너져버리는 캐리커처라 배우들에게 조금 미안합니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보다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거든요. 하긴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동안에는 관객들이 사정을 알 수 없는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기 마련이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영화 때엔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대가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14/06/20)

★☆

기타등등
전 통일삼국시대에 '퇴마부대'가 있었다는 [중천]의 뻥 정도는 판타지 설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인수의 증조할아버지가 '퇴마사'일 수는 없지 않나요? 이우혁이 만든 조어인데? 후손들이 멋대로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김정태 캐릭터의 직업을 고려해보면 그렇게 가볍게 말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독: 오인천, 출연: 강하늘, 김소은, 김정태, 한혜린, 박두식, 이아현, 곽정욱, 주다영, 주민하, 다른 제목: 소녀무덤, Mourning Grav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Mourning_Grav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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