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 (2012)

2012.07.03 00:26

DJUNA 조회 수:13882


낯선 집 지하실에서 기억을 잃은 세 사람이 깨어납니다. 공포소설 작가 소희, 백수 석호, 고등학생 인정. 이들은 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집을 둘러싼 숲을 가로질러 나가려 해도 제자리만 맴돌 뿐이고, 시간은 정지해있고,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숙련된 호러 관객들은 김동빈의 [두 개의 달]이라는 영화가 숨기고 있는 진상의 절반 이상은 맞히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반전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서브 장르인데. 여기서 전 선례가 되는 고전 영화들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만 두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스포일러이고, 아는 사람들에겐 시간낭비니까요.

다행히도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특정 호러 서브 장르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적어도 각본가인 이종호는 전문가라 언제까지 유치하게 반전에 집착할 생각 따위는 없어요. 영화는 사건의 일차 진상을 비교적 빨리 밝히는 편이며, 그것 가지고 '놀랐지?'하며 폼을 잡지도 않습니다. 전 영화의 국면전환점들이 모두 적절한 것 같아요. 불필요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흥을 깨지만,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좋은 편입니다. 익숙하지만 괜찮은 [환상특급] 에피소드 정도라고 할까요. 정말 그 정도의 러닝타임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김동빈이 집중하고 있는 영화적 장치는 빛의 제한입니다. 영화는 밤장면이 대부분이고, 조명이 랜턴이나 휴대전화 불빛으로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당연히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어둠의 여백이 생깁니다. 여기서는 온갖 것들이 다 튀어나올 수 있죠.

고전적이고 매혹적인 아이디어지만, 영화는 그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작 이것이 제대로 활용되는 장면은 생각보다 적어요. 예를 들어 '우리 편이 식칼을 든 미치광이 살인마와 한 방에 갇혔는데, 갑자기 불이 나갔다'와 같은 [어두워질 때까지] 스타일의 장면에선 정교한 조명의 안무가 굉장히 요긴하게 쓰일 것 같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화는 정작 이걸 하나도 안 쓰거든요. 그냥 적외선 촬영으로 해결해보이죠. 이런 춤이 나올만한 장면들은 이후에도 많은데, 정작 의도한 안무가 거의 보이지 않아요.

드라마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캐릭터들에게 호감을 갖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캐릭터가 많이 보일만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들, 그 중 특히 석호와 인정은 심각하게 짜증나는 사람들이에요. 짜증이 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짜증을 잘 내기도 하지요. 저들이 빽빽거리는 걸 보다 보면 죽건 말건 별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습니다. 호러 영화에서 이럼 곤란하죠. 감정이입을 위한 최소한의 접점은 남아있어야 하니까요.

연기 지도 역시 투박한 편입니다. 지나치게 장르에 함몰한 대사 때문에 배우들이 애를 먹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조율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에요. 물론 배우 각자의 한계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개인의 한계보다 연기 지도의 문제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빨리 찍은 저예산 영화라 그런 건지도 모르죠.

좋은 호러 장면들이 있습니다. 배우와 연출자 모두 공을 많이 들인 [엑소시스트] 스타일의 장면도 있지만, 저에게 가장 좋았던 건 하늘에 뜬 두 개의 달 이미지였죠. 제목과 프롤로그가 스포일러로 흥을 깨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 이 영화는 다 이런 식입니다. 괜찮은 장면들과 아이디어가 여기저기 있지만, 늘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뒤따르거든요. (12/07/03) 

★★☆

기타등등
가끔 일반 한국관객들이 저보다 짜증이라는 감정에 둔감한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두 개의 달]은 그런 관객들에게 맞추어진 영화인가봐요.

감독: 김동빈, 출연: 박한별, 김지석, 박진주, 라미란, 박원상,  다른 제목: Two Moon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wo_Moon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9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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