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아미 Bel Ami (2012)

2012.08.24 23:56

DJUNA 조회 수:14709


기 드 모파상의 [벨아미]를 읽는 독자들은, 도대체 왜 이 많은 여자들이 조르주 뒤루아 같은 인간에게 그렇게 목을 매는지 궁금해하기 마련입니다. 모파상은 뒤루아의 매력이 무엇인지 거의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으니까요. 하긴 모파상에게 뒤루아의 매력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뒤루아가 얼마나 야비하고 운 좋은 놈인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바빠요.

모파상의 소설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독자들은 아마 '뒤루아가 정말 미남이고 설명하기 힘든 남자다운 매력이 어딘가에 있나 보다'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뒤루아에게 매료될 필요가 없어요. [벨아미]는 [적과 흑]과는 전혀 다른 소설입니다.

하지만 영화화할 경우, 이건 문제가 됩니다. 관객들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배우가 연기하는 조르주 뒤루아를 직접 보게 되니까요. 이럴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외모인지, 섹스어필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조르주 뒤루아의 매력을 직접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외모나 매력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모파상의 텍스트를 따라가며 그의 야비함과 기회주의 성향에 집중해야 할까요? 물론 운이 좋아서 그 둘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데클란 도넬란과 닉 오머로드의 [벨아미]는 로버트 패틴슨을 조르주 뒤루아 역에 캐스팅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트와일라잇]의 인기에 편승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와일라잇]에서 패틴슨은 엄청난 인기와 여성팬들을 모았으니, 그를 캐스팅한다면 굳이 캐릭터의 섹스 어필이나 매력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랬다면 계산 착오입니다. 패틴슨의 매력은 [트와일라잇] 세계의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의미가 있죠. 그 영역을 넘어서면 그는 유치한 십대 취향 영화에 출연해 발연기를 하는 웃기는 배우일 뿐입니다. 전 그의 발연기가 평판만큼 그렇게 엄청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배우는 아니고요. 게다가 [트와일라잇]의 관객들과 [벨아미]의 관객들은 그렇게 겹치는 편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빠를 보겠다고 굳이 [벨아미]의 상영관을 찾은 패틴슨의 팬들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잃는 게 너무 많습니다.

내용을 아시나요. 유명한 책이니까 안 읽어도 아실 거 같은데. 조르주 뒤루아는 하사관 출신의 가난한 철도 공무원인데, 우연히 군대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 그의 추천으로 기자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글을 쓴 경험이 거의 없는 그는 포레스티에의 아내 마들렌의 도움을 받는데, 사실 포레스티에는 마들렌의 꼭두각시나 다름 없었죠. 뒤루아는 마들렌의 친구인 드 마렐 부인의 애인이 되고, 포레스티에가 죽은 뒤 마들렌과 재혼하며, 신문사 사장 왈테르(영화에서는 루세)의 부인과 불륜관계를 맺으면서 조금씩 출세의 길을 밟아갑니다. 그리고 뒤루아의 출세 과정은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 사회의 변화와 정교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영화 버전 뒤루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무능한 바보라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뒤루아는 야비한 악당이지만, 적어도 무능하지도, 게으르지도,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여전히 여자들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 스스로 실력을 쌓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꼭두각시예요. 그러다보니 캐릭터에 금이 갑니다. 이렇게 여자만 밝히는 멍청이에게 기회주의적인 책략을 꾸밀 능력이 있는 건지 의심이 가는 거죠.

패틴슨의 뒤루아는 이 혼란 속에서 아무 것도 안 합니다. 각본이 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감정만을 보여줄 뿐이죠. 그는 야비하지도 않고 교활하지도 않고 (패틴슨 추종자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섹스어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화를 잘 내고 욕심이 많은 젊은이일 뿐이에요. 심지어 제대로 모질지도 못합니다. 몇몇 장면에서 전 영화 속 뒤루아가 "미안해요. 다음부터 마음 고쳐 먹고 건전하게 살겠습니다"라고 사과할까봐 진심으로 걱정했었답니다. 결국 안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징징거리는 자기 변명은 그보다 특별히 덜 나쁠 것도 없죠,

그래서 이것이 의도일 거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레이첼 베넷의 각본은 아마 원작에 페미니즘의 관점을 더한 건지도 몰라요. 원래 모파상의 원작이 뒤루아보다 그와 관계를 맺는 여성 캐릭터들에 더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영화는 이 인물들에게 조금 더 힘을 주고 있어요. 마들렌은 거의 19세기 페미니스트로 보이고, 드 마렐 부인의 도덕적 비난은 보다 매섭습니다. 특히 뒤루아가 마들렌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약자임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은 재미있어요. 특히 성역할이 완전히 바뀐 두 사람의 섹스신은요.

그러나 그게 의도라고 해도 [벨아미]는 절반만 이룬 영화입니다. 일단 패틴슨은 그런 해석을 놓고 봐도 그렇게 좋지 못해요. 여전히 [벨아미]의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은 남아 있는데, 패틴슨은 그걸 못 하고, 각본도 새 관점과 원작을 조화시키는 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보다 나은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면 개선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덜컹거리는 영화로 남았을 겁니다.

패틴슨에 비하면 여자 배우들은 반짝거립니다. 크리스틴 스코트-토머스의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좀 궁상맞은 구석이 있죠. 우마 서먼의 캐릭터는 살짝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틴슨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들 아무런 노력 없이 그의 에너지와 빛을 가져가 버립니다. 특히 드 마렐 부인을 연기하는 크리스티나 리치가 보여주는 매력과 깊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죠.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서른이 넘었군요. 세상에. (12/08/24) 

★★☆

기타등등
영화의 시대배경은 1890년. 원작보다 10여년 뒤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용이 크게 바뀐 게 없으니까요. 아마 패션 선택이었나 보죠. 

감독: Declan Donnellan, Nick Ormerod, 출연: Robert Pattinson, Uma Thurman, Kristin Scott Thomas, Christina Ricci, Colm Meaney, Philip Glenister, Holliday Graing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44073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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