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 Nordwand (2008)

2010.05.12 10:50

DJUNA 조회 수:8637

 

독일제 산악영화라는 정보만 가지고 [노스페이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30년대 뉴스 영화 클립이 뜨고나서야 이 영화가 아이거 북벽 등반과 관련된 실화를 각색한 작품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아이거 북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게 뭐였더라? 집에 그와 관련된 책이 한 권 있고, 거기서 그 이야기를 분명 읽었는데? 하지만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벌써 시작해버렸고 전 그냥 영화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 기억이 제대로 떠올랐다면 그만큼 몰입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영화의 내용은 당연히 아이거 북벽 등반에 대한 것입니다. 1936년, 토니 쿠르츠와 안디 힌테슈토이저라는 두 독일 청년이 아이거 북벽 초등의 명예를 누리기 위해 산을 올랐고 오스트리아에서 온 에디 라이너와 윌리 앙거러의 등반팀이 그 뒤를 따랐죠. 밑에서는 관광객들이 4성 호텔에 투숙해 망원경으로 그들의 등반을 구경하고 있었고요. 산을 오른다는 행위가 결코 그렇게 단순할 수 없었던 때였지요. 나찌는 아이거 북벽 정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유명한 이야기니까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겠죠. 전 모르고 봤지만 아마 이 리뷰를 읽으러 찾아오신 분들은 어느 정도 사전 정보를 원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거 북벽이 정복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38년이었죠. 그렇다면 당시 나찌가 독일/오스트리아 합병의 상징으로 요란하게 선전했던 그 성공적인 등반 대신 이 이야기가 영화화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그들의 등반이 더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무난한 성공보다는 드라마틱한 실패가 더 관객들의 시선을 끌죠. 결국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선택은 주제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두 청년의 어린 시절 친구로 등장하는 사진기자 루이제 펠너와 그녀의 상관인 헨리 아라우를 통해 저널리즘의 윤리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특종과 센세이셔널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아라우의 입장과 드라마틱한 산악 역사의 비극을 (가상의 여자친구까지 만들어) 재구성해 이야기로 만들어 팔려는 이 영화의 제작자들의 입장이 그렇게까지 다른 걸까요? 전 양쪽 모두 대중에게 필요한 것들 제공해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무엇이건, 영화의 산악장면은 훌륭합니다. 어떤 효과를 동원했고 어디서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의 느낌이 강렬하게 나죠. 진짜 산과 진짜 위험의 느낌 말입니다. 다른 산악영화들과는 달리 산 밑에 있는 호사스러운 호텔과 눈보라 몰아치는 산을 대조해서 얻는 효과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산에 오르면 영화는 픽션을 접고 오로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의 재구성에 충실한데, 여기서부터는 실화의 힘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멜로드라마의 추가가 거의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갭을 메우기 위한 상상력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단지 비전문가 관객인 저로서는 중간중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 가끔 애를 먹었답니다. 이럴 때는 [터칭 더 보이드]의 친절한 해설이 그립더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그것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나 그런 거고, 어떤 사람들에겐 해설이 필요합니다. 참, 눈보라와 분장 때문에 종종 배우들의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웠던 것도 불편했어요. (10/05/12)

 

★★★

 

기타등등

저에게 아이거 북벽이라는 지리적 배경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이거 북벽]으로 더욱 친근합니다. 이 영화도 언젠가 다루어봐야 할 텐데 말이죠.

 

감독: Philipp Stölzl 출연: Benno Fürmann, Florian Lukas, Johanna Wokalek, Georg Friedrich, Simon Schwarz, Ulrich Tukur, Erwin Steinhauer, Branko Samarovski, Petra Morzé 다른 제목: 내 사랑 아이거, North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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