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의 마지막 차차차]의 주인공 아니타는 필리핀 군부대의 훈련장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 어른 아니타가 회상하는 어린시절의 아니타예요. 내용을 모르고 봐도 시작 5분만에 견적이 나옵니다.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꼬꼬마 레즈비언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을 발견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 발견에 불을 당기는 것은 한동안 외국에 나가있다가 돌아온 이웃집 언니입니다. 그리고 그 언니는 사촌오빠의 옛 여자친구이기도 했죠. 마을 어른들은 이 언니의 과거에 대해 수근대지만 그 언니가 진짜로 마을을 떠난 이유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말하지만 이런 종류 성장담의 핵심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디테일에 있지요. [아니타의 마지막 차차차]는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는 수많은 자잘한 디테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 디테일의 절반은 정교하게 그려진 어린 아니타의 내적 경험에서, 나머지 반은 무대가 되는 필리핀 시골 마을의 묘사에서 나옵니다.

어린 시절 아니타는 굉장히 용감하게 그려진 캐릭터입니다. 옆집 어른에게 성적 욕망을 품은 미성년자 이야기이고 그 아이가 동성애자이니 아슬아슬한 소재인데, 영화는 겁먹지 않고 이 소재를 정면돌파합니다. 그렇다고 정말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고요. 자신의 욕망을 서서히 깨닫고 그것에 대한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느끼는 꼬맹이의 생생한 내면에 집중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시골 마을은 솔직히 많이 부러운 곳입니다. 아니타와 같은 애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주변의 오지랖으로 죽었을 수도 있어요. 이 마을은 결코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여기에도 있고 경제적 문제도 심각하죠) 적어도 아니타와 같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고 곧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줍니다. 평범한 시골 아줌마인 아니타의 엄마도 쓸데없는 간섭 없이 아니타를 지원해주고요.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건 아니타의 두 친구인 카르멘과 고잉인데, 이들은 모두 너무 그럴싸한 시골 마을애들인데다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특히 아니타와 고잉을 모두 좋아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카르멘의 당당함은 감탄이 절로 나와요. 안 그럴 거 같아도 그냥 거기에 넘어가고 맙니다. 세 아이들의 어울림도 참 좋고요.

이웃집 언니 필라의 사연을 알게 된 뒤로는 이 캐릭터가 어떻게 그 문제점을 극복했는지, 아니, 극복을 하긴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요. 하지만 영화가 모든 이야기를 다 다룰 수는 없고 아니타와 같은 입장의 주인공이 그 후일담까지 챙기면 이야기는 비현실적이 되겠지요. 아쉽지만 딱 적당한 자리에서 끊은 것 같습니다. (15/06/13)

★★★☆

기타등등
영화는 필리핀에서 처음엔 X등급을 받았다는데 이유는 데일리와 GV 때의 정보가 조금씩 다르군요. 데일리에서는 어른에 대한 어린이의 성적 판타지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하고 GV에서는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하여간 동성애 때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이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고 해요.


감독: Sigrid Andrea Bernardo, 배우: Angel Aquino, Teri Malvar, Jay Bordon, Marcus Madrigal, Lui Manansala, Lenlen Frial, Solomon Mark de Guzman, 다른 제목: Anita's Last Cha-Cha

IMDb http://www.imdb.com/title/tt32049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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