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덱스 Judex (1916)

2014.09.11 00:07

DJUNA 조회 수:2890


[뱀파이어]와 [팡토마스]의 대성공 이후 감독 루이 푀이야드는 영화를 통해 범죄자들을 미화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를 고려했는지, 1916년에 나온 12부작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14부) 연재영화 [쥐덱스]에서는 주인공이 범죄자가 아니에요. 여전히 망토을 걸치고 폼을 잡는 주인공은 전작의 범죄자들이 했을 법한 일들을 저지르긴 합니다. 하지만 그에겐 정당한 이유가 있어요. 그는 지금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쥐덱스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파브로라는 악덕 은행가의 집에, 너의 죄를 알고 있으니 당장 재산을 기부하지 않으면 큰일 날 거라는 협박편지를 보내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파브로는 이를 무시하고 딸 자클린의 약혼 기념 파티를 열지만 자정을 넘기자마자 갑자기 죽어버립니다. 장례식날, 아버지의 비서 발리에르로부터 아버지가 얼마나 지독한 악당이었는지 들은 자클린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저번 결혼에서 얻은 아들 장을 유모에게 보낸 뒤 영어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자립하려 하죠. 그런데 어느 날 밤 자클린에게 죽은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제발 날 용서해다오..."

끝내주죠. 과연 푀이야드가 설명은 생각하고 이 장면을 만들었는지 전 모르겠어요. 전 그냥 만든 다음에 설명을 추가했을 거 같습니다. 전작 [뱀파이어]도 그렇지만 [쥐덱스]도 코 앞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달리는 구석이 있어요. 쥐덱스의 정체처럼 사전에 완성한 설정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자동기술적인 질주가 멎는 건 아닙니다.

[쥐덱스]는 앞의 두 영화보다 더 혼란스럽습니다. [뱀파이어] 같은 영화는 이야기가 정신없어도 분명한 선악 구별이 있잖아요. 종종 등장인물들이 그 선을 오가긴 하지만 나쁜 건 나쁜 거고 옳은 건 옳은 거죠. 하지만 [쥐덱스]의 경우는 그 경계선 자체가 흐릿합니다. 쥐덱스는 아버지의 복수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을 납치해 가두고 정신병자로 만드는 걸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이 영화에도 이 상황을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디아나 몽티와 같은 명쾌한 악당들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는 쥐덱스의 복수담이라기보다는 그의 복수가 일으킨 부작용의 카오스를 수습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나는 네 애비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다니 네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같은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로 도배가 된 영화이긴 하지만, [쥐덱스]는 푀이야드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통속극인 것만큼 아방가르드입니다. 뻔한 클리셰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이들은 현실을 초월한 무성영화 시대 꿈의 논리에 의해 묶여 있어서 보고 있으면 멍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스토리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산만해지는 후반부엔 더욱 그렇고요. 앞의 영화들에 비해 갑갑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푀이냐드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권선징악과 통속성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시네마 우주에 도달할 수 있었던 드문 예술가입니다. 어디까지가 그의 재능이고, 어디까지가 그냥 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4/09/11)

★★★☆

기타등등
1. 1916년에 개봉되었습니다만 원래 1914년에 찍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뒤로 밀린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백 년 전 영화죠.

2. 자클린의 아들 장을 연기한 아역배우는 여자아이입니다. 올린다 마노. 이 아이는 남자 옷만 입고 있을 뿐, 새로 사귄 '남자친구'에겐 계속 여자애처럼 굴어요. 뽀뽀도 엄청 하고. 당시엔 여자아이가 남자애를 연기하는 건 흔한 일이었는데, 이런 행동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1세기 관객들에게만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죠.


감독: Louis Feuillade, 배우: René Cresté, Musidora, René Poyen, Édouard Mathé, Gaston Michel, Yvonne Dario, Yvette Andréyor, Juliette Clarens, Jean Devalde, Georges Flateau, Louis Leubas, Marcel Lévesque, Olinda Mano

IMDb http://www.imdb.com/title/tt000688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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