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Snezhnaya koroleva (1957)

2015.03.02 19:52

DJUNA 조회 수:3689


디즈니가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자기식으로 각색하기 위해 몇십년 동안 삽질을 하는 동안 이미 소련에서는 레프 아마타노프가 같은 원작으로 준수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긴 당시 소련 사람들은 디즈니사의 작가나 애니메이터들이 받았던 스트레스나 의무감은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해야지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까" 따위에 신경쓰지 않고 원작에 충실한 양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이 영화는 1957년에 나와 베네치아와 칸에서 호평을 받았고 아직도 소련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겨울왕국]과는 달리 원작에 충실한 편입니다.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영화에는 주인공 소년 카이가 갑자기 마법에 걸린 게 마법의 거울로 자기를 놀려대는 아이들을 본 눈의 여왕이 뿌린 얼음가루 때문이라고 나오죠. 하지만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안데르센의 원작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마법에 걸린 소년 카이가 눈의 여왕에게 납치되자 친구인 소녀 게르다가 그 아이를 구하러 모험을 떠난다는 거죠.

아주 매력적인 각본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일단 원작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자기만의 개성이 부족합니다. 내레이터로 잠의 요정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아주 쓸모없는 캐릭터라서 이야기 진행에 방해만 되고요. 디즈니 영화에서 당연시되는 생생한 캐릭터 묘사도 부족한 편입니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중간에 나오는 산적의 딸 정도인데, 이 캐릭터는 원작에서도 생생한 인물이었죠. 이 부분에선 나른하게 진행되던 영화가 갑자기 활기를 얻는다는 기분이 듭니다.

기술적 완성도는 높습니다. 공산주의 시스템 속 넉넉한 노동자원들을 100 퍼센트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냉소적일까요. 하지만 결과물이 좋다는 이야기인 걸요. 산적의 딸캐릭터와 눈의 여왕을 제외하면 캐릭터의 차별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림은 아름답고 특히 겨울 묘사는 압도적입니다. 역시 러시아 사람들이라 이런 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눈의 여왕에게 카이가 납치당하는 장면, 게르다가 순록을 타고 눈의 여왕의 궁전으로 돌진하는 장면과 같은 부분에서는 성실하기만 한 각본을 넘어서는 영화만의 힘이 있어요. 동시대 대중음악의 감상주의 때문에 요새는 좀 낡게 들리는 디즈니 음악과는 달리 아르테미 아이바지안의 클래식한 음악은 여전히 단단합니다.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영화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이나 애니메이션은 이후 지브리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죠. 미국에서도 더빙되어 상영되긴 했는데 원작에 없는 실사 프롤로그가 들어가고 음악을 자기 식으로 갈아 엎어버렸어요. 두 버전 모두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15/03/02)

★★★

기타등등
[겨울왕국] 얼마 전에 나온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눈의 여왕]도 러시아 영화입니다. 평은 그냥 그렇더군요. 전 예고편만 봤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독: Lev Atamanov, 배우: Vladimir Gribkov, Yanina Zhejmo, Anna Komolova, Mariya Babanova, Sergei Martinson, Galina Kozhakina, 다른 제목: Snow Quee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098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60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