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들 (2012)

2012.08.22 00:35

DJUNA 조회 수:16072


(전 여기서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공모자들]의 기본 설정은 존 딕슨 카의 고전 단편 [B-13 선실]과 비슷합니다. 여객선을 타고 부부가 여행을 떠났는데 한 명이 실종됩니다. 남은 한 명은 실종된 배우자를 찾으러 배를 뒤지지만, 같이 찍은 사진이나 가져온 물건은 사라진지 오래. 심지어 서류에도 배우자의 흔적이 없네요. 미칠 일입니다.

하지만 [B-13 선실]과 비슷한 부분은 영화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남편 상호는 주인공도 아니죠. 게다가 우리는 이미 사건의 기본 진상을 압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국행 여객선 안에서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적출하는 밀매조직 일당들입니다. 불쾌한 종자들이죠.

김홍선 감독은 2009년 주간지에 실린 신혼부부 장기밀매 사건을 접한 뒤, 1년 동안 굉장히 열심히 취재를 해서 이 각본을 썼다고 합니다. 그 결과 기업형 장기밀매조직의 작업 방식에 대한 굉장히 상세한 디테일이 영화에 담겨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첨가한 허구도 있어요. 예를 들어 작업이 여객선의 사우나에서 벌어진다는 설정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고로 관객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괴담이고, 어디까지가 감독이 만든 허구인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장기밀매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죠.

서스펜스의 강도가 굉장히 높은 영화입니다. 다리를 못 쓰는 여자가 납치되어 여객선 사우나실의 수술대 위에 올랐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계속 그 위기순간이 조금씩 유예됩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는 동안 온갖 폭력적인 상황들 속에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요. 이런 상황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상한 거겠죠.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재미와 상관없이 좋다는 생각도 안 들고요.

일단 영화의 반전들이 문제입니다. 거의 [와일드 씽] 수준으로 나와요. [와일드 씽]은 블랙 코미디로, 그런 반전들 자체가 코미디의 일부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공모자들]은 진지한 사회물을 의도하고 있지요. 그런데 영화가 반전을 만들려고 넣은 인위적인 트릭들이 계속 이야기의 사실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이는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죠. 아무리 이런 반전이 감독이 심어놓은 주제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요.

이 반전의 과정은 그냥 악랄합니다.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나오는 인간들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빠요. 그들 주변은 오로지 불쾌함이라는 하나의 코드만 가지고 연기하는 단역들이 버티고 있고요. 아마 사실적인 묘사일 겁니다. 원래 우린 그렇게 상쾌한 동물이 아니고 특히 몇몇 업종은 그런 불쾌한 무리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 과정이 드라마와 캐릭터의 깊이를 날려버리거든요. (나름 감독이 공을 들인 영규 캐릭터도 특별히 나을 게 없습니다.) 둘 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데 말입니다. 그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너네가 사는 세상은 썩었고 썩었으며 썩었어!"라는 단문에 불과해서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저 같은 관객들은 내용에 지치고, 메시지에는 냉소적이 됩니다.

'오락용'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여기서 전 '오락물'을 비교적 넓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비슷한 형식의 [추격자]는 비슷한 수준의 끔찍한 상황을 다루었지만, 여전히 훌륭한 오락물입니다. 그 끔찍한 상황 안에는 흥미로운 인간들과 그에 바탕을 둔 강한 드라마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벤치마킹한 게 거의 확실한 [공모자들]은 오로지 극단적인 상황 만들기와 비명만을 따라하고 있어요.

캐스팅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건 임창정의 연기입니다. 그가 아마 처음으로 맡은 악역일 거예요. 물론 가끔 옳은 일을 하려는 악당이지만, 사람 장기 파는 악당이 옳은 일을 해 봤자죠. 하여간 영화는 그에게 연기할 거리를 많이 주는 편이고, 그도 그 대부분을 잘 소화해냅니다. 이 정도면 그가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겠죠. 다른 배우들은 캐릭터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겠군요. 이 정도 정보만으로 이미 내용을 몽땅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12/08/22) 

★★☆

기타등등
이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사실만을 말하려 노력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는 게 더 좋죠. 영화가 나오면 이 주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감독: 김홍선, 출연: 임창정, 최다니엘, 오달수, 조윤희, 조달환, 정지윤,  다른 제목: The Trafficker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Trafficker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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