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 (2012)

2012.10.22 23:02

DJUNA 조회 수:21704


조성희는 2009년 [남매의 집]으로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혜성과 같은 신인으로 떠오른 감독이죠. 그 다음 해에 나온 첫 장편 [짐승의 끝]은 전작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멋진 영화였고, 전 여전히 그 작품이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재난영화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그가 첫 상업 장편을 찍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두들 기대가 컸죠. 도대체 어떤 괴물이 나오려나.

그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늑대소년] 같은 영화를 상상했을까요? 암만 봐도 이 영화는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의 감독이 만들 거라 생각했던 '괴물'과 거리가 멀어요. 소녀 감수성을 작정하고 자극하는 화사하고 예쁘장하고 오글오글한 순정만화스타일의 동화지요.

이제 할머니가 된 여자주인공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시대배경은 1960년대입니다. 요양차 가족과 함께 시골에 온 소녀 순이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말 못하는 소년 철수를 발견합니다. 순이네 가족은 살 곳이 생길 때까지 철수를 돌보는데, 알고 봤더니 철수는 단순히 전쟁 때 버려진 야생아가 아니라 비밀 실험으로 탄생한 정체불명의 존재였답니다.

[늑대소년]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소녀와 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석되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그래요. 감독 입으로 직접 그렇게 말했고, 보고 있으면 다른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순이는 철수를 길들이기 위해 애견 훈련 교재를 사용해요. 철수는 영화 내내 사람 모양의 개처럼 행동합니다.

이 정도면 [트와일라잇]의 제이콥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영화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보다보면 감독의 얄미운 심술이 느껴질 정도죠. 관객들은 순이와 철수의 관계는 당연히 로맨스로 읽겠지만, 자세히 보면 '소녀와 개'의 공식이 로맨스보다 더 큽니다. 무시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결말을 보세요. 철수가 순이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로맨틱한 애정이 아니라 개가 주인에게 품는 무조건적 충성입니다. 아무리 송중기가 연기를 했어도 철수는 여전히 개인 겁니다. 멍멍멍.

영화의 대부분은 6,70년대 감수성에 기반을 둔 순정만화인 척하는 코미디입니다. 순정만화의 이야기는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이를 2010년대의 관점에서 가볍게 놀리는 것처럼 그리고 있지요. 그렇다고 완벽하게 코미디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멜로드라마나 스릴러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으면 또 나름 진지하긴 하니까요. 사실 이 영화의 코미디는 코미디와 진지한 멜로드라마의 경계선에서 가장 역할이 큽니다. 드러난 농담보다는 살짝 핀트가 어긋난 것처럼 흘러가는 리듬감과 태도가 더 큰 역할을 하죠.

감정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후반부도 전 조금 삐딱하게 보게 됩니다. 우선 그런 위기상황을 만들어내는 악당 지태는 진지한 악당이 아니에요. 6,70년대 영화에 나올 법한 구식 악당들의 패러디지요. 그 뒤의 위기상황 역시 진지하다기보다는 과거의 구체적인 영화 스타일을 냉정하게 흉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아주 정확한 흉내라서 종종 진짜와 흉내의 경계선이 무너지긴 하지만 말이죠.

[늑대소년]은 우리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지만 조성희의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엉뚱한 유머와 리듬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단지 이것이 공포스럽거나 비밀스러운 방식이 아닌 로맨틱한 멜로드라마와 보다 노골적인 코미디의 형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다를뿐이죠. 전 여전히 전작들의 뒤를 잇는 '괴물들'을 기대하지만 이 방향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일단 여전히 재미있으니까요. (12/10/22)

★★★

기타등등
이 영화까지 합치면 유연석은 올해의 밉상배우로 등극입니다. 누가 그를 이기겠습니까.

감독: 조성희, 출연: 박보영, 송중기, 장영남, 김향기, 유연석, 다른 제목: A Werewolf Boy

IMDb http://www.imdb.com/title/tt231515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8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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