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사람 The Cameraperson (2016)

2016.12.25 23:38

DJUNA 조회 수:3750


[카메라를 든 사람]. 그러니까 카메라맨이 아니라 카메라퍼슨입니다. 카메라퍼슨이 더 올바른 표현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커스틴 존슨이 '카메라맨'이 아니기 때문이죠. 존슨은 카메라퍼슨입니다.

조금 재활용품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채우고 있는 클립 대부분은 커스틴 존슨이 지난 20년 동안 '카메라퍼슨'으로 일하면서 찍은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짜투리들입니다. 일부는 그냥 가족을 찍은 홈무비 클립이고요. 그러니까 보통 블루레이 부록으로 실리 거나 가족들이 모아 볼 클립들을 모아서 따로 영화를 만든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가볍게 들리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반대예요. 이 클립들이 블루레이에 실린다면 본편을 보조하는 부록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죠. 하지만 이 영화들을 찍은 촬영감독이 이 짜투리들을 모아서 재편집하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됩니다.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 갑자기 주인공이 되고 이 주인공의 관점에서 모든 게 재해석됩니다.

이제 이 클립들은 20년의 전세계를 오가며 수많은 영화에 참여한 직업인의 회상록이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에서 익명의 눈으로 숨어 있던 촬영감독의 작업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구멍이 되어주기도 하죠. 보통 때는 카메라 뒤의 사람이 재채기를 하거나 실수로 카메라를 흔들거나 감독과 잡담을 나누어 버려졌던 클립들이 진지한 임무를 띄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재미있지 않나요. 극영화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은 대부분 잉여입니다. 꼭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진짜 세상을 찍는 것이고 여기엔 잉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 클립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의 개입이죠.

조금 사진집처럼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세계를 돌며 전세계인들의 모습을 찍은 20세기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사진집을 생각해보세요. 이런 책들을 볼 때 여러분은 각각의 사진들이 담은 순간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 그 독립된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에 말려들잖아요.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단지 그 순간이 클립으로 연장된 것이죠. 브루클린,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나이지리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안고 아무런 소개 없이 화면에 끼어들고 여기엔 작가의 개인사도 은근슬쩍 삽입됩니다. 이들이 반복해 등장하면서 우린 점점 처음엔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에 잡힌 특정 순간 자체이고 이 각각의 사람들이 영화의 흐름 속에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인간가족]적인 분위기입니다.

넓게 보면 엄청나게 세계적이고 좁게 보면 한없이 개인적이며 종종 이 이들 아무런 장애나 모순없이 공존하는 영화입니다. 어떻게 보면 별다른 야심없이 단순하게 만들어진 소박한 기획이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의미에 대해 깊게 질문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16/12/25)

★★★☆

기타등등
올해는 DMZ 영화제를 놓치는 줄 알았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디스페이스에서 한 앵콜 상영전에서 한 작품을 건질 수 있었답니다.


감독: Kirsten John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53750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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