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 (2012)

2013.09.18 13:32

DJUNA 조회 수:8617


2010년부터 허정은 세 편의 호러 영화를 논스톱으로 찍었습니다. 단편인 [저주의 기간]과 [주희] 그리고 첫 장편인 [숨바꼭질]. 이 세 편은 모두 현대 대한민국의 아파트라는 공간을 중요한 소재 겸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삼부작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이들을 줄지워 세우면 [저주의 기간]이 가장 좋고 [숨바꼭질]이 가장 떨어집니다. [주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두 작품의 중간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래도 [숨바꼭질]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한 무리의 여자중학생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본 일본 동영상을 따라 인형의 몸에 머리카락이나 피를 넣고 소원을 비는 의식을 해요. 그리고 이 주술 놀이를 하는 동안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였던 주희라는 학생이 며칠 뒤 사라집니다. 

현실적인 캐스팅의 [여고괴담] 이야기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여고괴담] 시리즈 중 한 편에서 사용된 적 있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집도 가난한 아이가 안락한 중산층 가족 출신인 친구를 동경하고, 그 아이가 되기를 바라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합니다. 

여러 면에서 [숨바꼭질]과 비슷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레이션, 악역의 욕망과 동기는 거의 완전히 겹치죠. 몇몇 캐릭터 이름도 공유하고 있고요. 하지만 스토리와 캐릭터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숨바꼭질]과는 달리 [주희]는 이야기에 딱 맞는 사이즈의 그릇 안에 담겨있습니다. 감독 말에 따르면 [숨바꼭질]의 각본이 먼저였고, 영화 속 특정 캐릭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 같아 따로 단편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허정은 중년남자보다는 아이나 청소년을 더 잘 다루는 것 같고, 아직은 장편보다는 중단편이 편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거의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소재와 대비를 이루는 사실적인 묘사입니다. [저주의 기간]과는 달리 분명한 초자연적 주술이 개입되어 있는데도 영화는 이를 무덤덤하게 일상 안에 녹여냅니다. 장르 충격 효과가 거의 없고 배우들이 연기가 거칠지만 사실적이라서 이 익숙한 괴담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와요. 초자연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숨바꼭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영화입니다. (13/09/18)

★★★

기타등등
대단한 단편영화제에서 보았습니다. 계속 볼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었는데 말이죠. 이번 미쟝센 영화제는 어쩌다가 놓쳤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허정, 배우: 오유진, 엄서현, 다른 제목: The Wish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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