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2012)

2012.12.17 23:21

DJUNA 조회 수:21585


[캐츠],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을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한다죠. 이게 무슨 말인가요. 정말 이들이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란 뜻인가요? 그럴 리가요. 아마 그건 8,90년대에 웨스트 엔드나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한 작품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모두 카메론 맥킨토시가 제작한 작품이니 그의 대표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죠. 하여간 이상한 주장이며, 전 이게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헛소리 같습니다.

쇤베르크와 부브릴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사실 좋은 작품입니다. 인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위대한 원작에 바탕을 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노래들로 꽉꽉 차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긴 이야기를 지나치게 압축하다보니 스토리 전개가 너무 빠르고, 좋은 노래들이 많긴 하지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빽빽하지요. 종종 각 노래의 악상이 심각하게 충돌해서 어색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Sung-through' 뮤지컬의 특징이라고 변호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오페라들을 보세요. 여러분은 [라 보엠]에서 [그대의 찬손] 이후 [내 이름은 미미]가 나온다고 해서 갑갑함을 느끼지는 않잖습니까. 전 이게 그냥 작품의 결함 같습니다.

톰 후퍼의 영화에서 이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갑갑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일반적인 관객들은 이런 영화에서 보다 통풍된 버전을 기대하니까요. 사실 영화는 공간적으로 통풍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주의적인 무대 뮤지컬의 소스가 전형적인 영화적 편집에 얽히면 오히려 더 갑갑하거나 어색해보이죠. (전에 앨런 파커의 [에비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기에 대해 언급한 적 있습니다만.) 하여간 장 발장이 "Who Am I?"을 부르면서 재판정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을 보세요. 무대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공간 이동이 아주 어색하고 이상할 정도로 속도가 증가됨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속도는 종종 액션과 액션 사이의 미묘한 영화 연기를 망치기도 합니다. 도저히 그런 연기를 할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까요.

과연 여기에 해결책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영화는 음악에 갇힙니다. 하지만 영화화 과정 중 각본과 음악의 해체/재조립을 거쳤던 걸 보면 방법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방법을 시도하기엔 러닝타임이 부족했던 건지도 모르죠. 지금도 상당히 기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퍼의 [레 미제라블]은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진 영화입니다. 아무리 가속되고 간략화되었다고 해도 원작소설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뮤지컬 버전은 다른 각색물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독백 역할을 하는 아리아들을 통해 내면 갈등이 액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원작의 내용을 상당히 살려낸 것이죠. 여전히 이 뮤지컬 영화버전은 지금까지 나온 [레 미제라블] 영화들 중 원작의 드라마를 가장 많이 살린 영화입니다. 심지어 다른 영화들에서는 가볍게 스치며 지나가는 가브로슈도 상당한 비중으로 살려냈지요.

영화는 선동적이기도 합니다. 물론 원작 자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 버전처럼 바리케이드를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다룬 작품은 드물죠. 프랑스 리버럴 지식인의 고상한 척이 극에 달했던 조제 다양과 디디에 드코앵 콤비의 미니 시리즈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진짜 새빨갛습니다. 이 영화의 운동권 오빠들이 휘두르는 붉은 깃발처럼. 여기서 중요한 건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난 정치성 때문에 원작이 가진 사회적 깊이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뮤지컬 영화로서 [레 미제라블]의 가장 큰 장점은 라이브 음악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 최초는 아닙니다. 이미 95년에 나온 [판타스틱스] 영화판이 라이브 뮤직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최초건, 아니건, [레 미제라블]은 지금까지 뮤지컬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중간 과정을 통하지 않고 노래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 말입니다. 후퍼는 노래가 나올 때는 주로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기 때문에 연기의 섬세한 터치가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물론 이런 클로즈업 위주의 화면 때문에 영화가 갑갑하기도 합니다. 종종 뒤로 빠지면서 큰 그림을 보여달라고 부탁하고 싶기도 해요. 영화적으로 단조롭기도 하고. 하지만 배우들이 워낙 좋다보니 이 불평은 그냥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들이 모두 완벽한 가수라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배우의 노래는 원래부터 무대 뮤지컬 배우나 전문 가수와는 달라야죠.

전 언제나 완벽한 [레 미제라블] 영화를 기대해왔습니다. 톰 후퍼의 영화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본 어떤 영화들도 그 기준에 도달한 적은 없어요. 그래도 후퍼가 원작의 상당 부분을 알차게 담고 그를 통해 사람 마음을 쾅쾅 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12/12/17)

★★★☆

기타등등
조금 검색해봤는데, 소위 '세계 4대 뮤지컬'이란 건 한 동안 런던과 뉴욕에서 히트했던 'The Big Four'를 번역하다 오역으로 튄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긴 줄 세우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덥썩 물 만한 실수이긴 해요.

감독: Tom Hooper, 배우: Hugh Jackman, Russell Crowe, Anne Hathaway, Amanda Seyfried, Sacha Baron Cohen, Helena Bonham Carter, Eddie Redmayne, Aaron Tveit, Samantha Barks, Daniel Huttlestone, Colm Wilkinson, Stephen Tate, Isabelle Allen

IMDb http://www.imdb.com/title/tt170738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9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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