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텀 Sanctum (2010)

2011.02.03 17:50

DJUNA 조회 수:12093


스펙만 보았을 때, [생텀]은 기대가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선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영화이고, 그가 [아바타]에서 사용했던 3-D 테크놀로지가 쓰였답니다. 때깔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이야기는 공동 각본가인 앤드루 와이트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영화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을 다 겪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가 동굴 탐사의 진짜 전문가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할리우드가 상상한 판타지 말고, 진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란 말이죠.


영화는 파푸아 뉴기니 섬의 에사 알라 동굴이라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주인공 일행은 하늘을 향해 열린 커다란 송곳구멍처럼 생긴 이 동굴에서 몇 개월 째 머물며 탐사를 하고 있습니다. 탐사의 목적은 이 동굴 끝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로 열린 출구입니다. 이 배경의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 사실인지 전 모릅니다. 저한테 묻지 마세요. 하여간 영화 초반이 되면 갑자기 닥친 홍수 때문에 동굴 입구가 막히고 탐사팀은 살아남기 위해 맞은편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영화의 인간 드라마는 부자간의 갈등입니다. 탐사팀의 리더인 프랭크는 동굴탐사에 미쳐 가족에 소홀한 아버지이고, 그의 아들 조시는 그런 그가 못마땅합니다. 일련의 모험을 겪으면서 부자는 화합하고, 아들은 결국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긴 하지만.


결코 성공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각본으론 프랭크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프랭크가 훌륭한 리더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가 보기엔 정반대입니다. 그는 분명 동굴 속 생존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실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사람들이 동굴 속에 갇혀서 히스테리컬하게 고함을 질러대고 있다면 리더는 이들을 안심시키고 협동할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인간은 같이 고함을 질러대는 독불장군에 불과합니다. 이건 상황이 끔찍하다는 것만으로는 변명이 안 됩니다.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인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면 "미움 받을만 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나머지 인간들도 특별히 좋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끔찍한 상황에서 고함만 질러대는 짜증나는 무리라는 사실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누군들 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그 짜증나는 상황과 행동이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면 곤란합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느끼는 건 오로지 물리적 자극으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3-D 액션을 기대해야 할 텐데, 이게 실망스럽습니다. 사실 실망하는 게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입체시를 추가하면 대자연의 모험이 더 생생하게 느껴질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시죠. 대상이 10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입체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양 눈과 대상이 만들어내는 삼각형의 모양을 떠올려보세요. 그 정도 길이라면 양쪽 아래각은 거의 90도입니다. 추가정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입체시를 느끼려면 일부러 밑변을 늘려야 하는데, 그럼 대상은 축소되어 보이니 장대함은 날아갑니다. 게다가 동굴은 처음부터 어두컴컴하기 그지 없는 곳인데, 3-D로 보겠다고 편광안경까지 꼈으니, 영화 내내 화면이 갑갑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전 중간중간에 3-D 안경을 벗고 영화를 봤는데 조금 뿌옇게 보였을 뿐,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문가의 관점이라는 것도 그냥 그렇습니다. 영화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런 탐사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들의 마초적 자존심입니다. 그게 [터칭 더 보이드]처럼 근사하게 다루어졌다면 불만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생텀]의 태도는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 자리에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영화는 여기에 아주 건성입니다. 동굴 잠수에 대한 정보들이 여기저기 나오긴 하지만 하나로 묶이지 않고, 정작 동굴과 상황 묘사가 아리송합니다. 관객들이 영화 내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들이 땅 속 어딘가에 있고 계속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생텀]이라고 멋진 제목을 붙여주었지만, 영화 속 동굴은 입구를 보여주는 초반 몇 분을 제외하면 대단한 존재감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전 이 영화가 러닝타임 3,40분 정도의 2-D 아이맥스 다큐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영화를 63빌딩 상영관과 같은 진짜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스펙터클은 스펙터클 대로 살았을 거고, 엉성한 인간 드라마 때문에 짜증날 이유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11/02/03)


★★


기타등등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전등의 배터리가 닳을까봐 계속 걱정을 하던데, 그렇다면 왜 한 사람만 헬멧 전등을 켜고 다니지 않았던 거죠. 웬만한 곳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거고, 배터리 수명도 몇 배로 늘릴 수 있었을 텐데.


감독: Alister Grierson, 출연: Richard Roxburgh, Ioan Gruffudd, Rhys Wakefield, Alice Parkinson, Dan Wyllie, Christopher Baker, Nicole Downs, Allison Cratchley


IMDb http://www.imdb.com/title/tt088132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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