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에서 온 여인]은 1942년에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저예산 전쟁선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나 스토리가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던 그 짧은 시기에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영화 막판의 '그래도  중국은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식으로 흐르는 장황한 설교와 같은 것은 그 의도를 고려하며 봐야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마담 콴 메이라는 중국의 레지스탕스 리더입니다. 콴 메이와 동료들은 논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위장하고 있는 중인데, 격추된 두 명의 미국인 조종사가 그곳으로 떨어집니다. 그들은 부상당한 한 명을 아지트로 빼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다른 한 명은 일본군에게 체포되고 말죠.

여기서부터 무대는 한스 그루버라는 독일인이 운영하는 호텔로 옮겨집니다. 그곳에는 이 영화의 악당인 카이무라 장군이 머물고 있고, 미국인 포로인 로드니 카도 호텔의 지하실에 감금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미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바라라는 금발 여인이 가수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죠. 둘 사이의 짧은 로맨스는 당연한 일.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백인 커플이 아니라 콴 메이입니다. 콴 메이는 카이무라 장군에게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귀부인의 모습으로 호텔에 나타나 장군을 유혹합니다. 그러는 동안 콴 메이의 동료들은 과연 리더를 믿어도 되는 건지 걱정하기 시작하고요. 기껏해야 한 시간을 간신히 넘는 짧은 영화이기 때문에 이 모든 고민은 그렇게 긴 편이 아닙니다. 

무대가 중국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중국티가 나는 작품은 아닙니다. 적어도 스토리만 본다면 이게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인지, 일본군 점령하의 중국인지 헛갈릴 지경이죠. 특히 이 영화의 일본군들은 그냥 나치 독일군 같습니다. 적어도 중국인 역할들은 안나 메이 왕과 같은 동양계 배우들이 하고 있지만, 일본군 장군이나 장교 역할은 몽땅 (별다른 분장도 하지 않은) 서양 배우들이 하고 있으니 정말 그런 착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의도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의 유디트 이야기와 많이 닮았습니다. 적어도 카이무라 장군은 일본인 홀로페르네스입니다. 콴 메이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이 남자는 심지어 콴 메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뒤에도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잃지 않죠. 아니, 오히려 그 이후에 그런 감정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카이무라입니다. 직설적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결말을 조금이나마 독특하게 만드는 것도 그의 괴상한 판단이고요. 

[중경에서 온 여인]은 클래식이라기보다는 그냥 고물인 영화지만, 그래도 여기에 어떤 '클래식'의 아우라를 더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안나 메이 왕의 존재감입니다. 하긴 제2차세계대전 선전영화 팬이 아닌 평범한 관객에게 이 영화를 봐야 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12/11/16) 

★★☆

기타등등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다시 말해 법에 걸리지 않고 구질구질한 화면의 파일을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단 말이죠. 전 유튜브에서 봤습니다. 

감독: William Nigh, 배우: Anna May Wong, Harold Huber, Mae Clarke, Rick Vallin, Paul Bryar, Ted Hecht, Ludwig Donath, James B. Leong, Archie Got, Walter Soo Hoo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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