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호러 관객들이 [블러드 비스트의 복수]를 본다면 대충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연배우 바바라 스틸과 감독 마이클 리브스. 물론 옛날에 만들어진 아주 형편없는 영화들만 골라서 보는 악취미가 있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죠.

전 1번, 그러니까 바바라 스틸 팬에 속합니다. 하지만 스틸 팬에게 이 영화는 실망스럽습니다. 바바라 스틸 캐릭터는 영화의 3분의 1 지점에서 사라지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나 간신히 다시 등장할 뿐입니다. 그리고 스틸은 이 영화의 호러 파트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아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감독 마이클 리브스에겐 바바라 스틸과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겨우 하루밖에 없었답니다. 20시간 동안 스틸이 나오는 모든 장면을 찍어야 했대요. 이 영화의 말도 안 되는 설정도 이에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마녀는 조 라일리라는 남자가 연기했답니다.

감독인 마이클 리브스는 누구냐고요?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연한 [위치파인더 제너럴]이라는 컬트 영화를 만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겨우 네 편의 영화만을 만들고 24살에 약물 중독으로 죽었어요. [블러드 비스트의 복수]는 그의 첫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미래의 컬트 영화의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일까요. 음. 너무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입부와 설정은 역시 바바라 스틸 주연인 [사탄의 가면]과 비슷합니다. 옛날 옛적 트란실바니아의 마을 사람들이 흉악하게 생긴 마녀를 고문해서 죽였습니다. 현대로 넘어오면 영국인 신혼 커플이 마을을 방문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주인으로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가 짜증을 내며 나옵니다. 커플은 갑자기 자동차가 이상을 일으켜 호수에 빠집니다. 남자는 무사히 구조되는데 여자 대신 몇백년 전에 죽은 마녀의 시체가 끌려나옵니다. 여자를 구하려면 마침 근처에 사는 폰 헬싱 박사의 도움을 받아 마녀가 여자를 '낳게 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디까지가 만든 사람들의 의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 마담인 주연배우가 조연 비중인 영화이니, 촬영 당시 상황은 당연히 나빴겠죠. 하지만 영화는 그냥 못만들어서 웃긴 영화는 아닙니다. 분명 리브스는 어느 정도는 코미디를 하려고 했을 거예요. 일단 영화의 화면이 아주 밝아요. 밤 장면도 없고요. 당시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아주 뻔뻔스러운 농담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에 벌이는 슬랩스틱 카 체이스 장면은 리브스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세컨드 유닛의 촬영팀이 나름 진지하게 찍은 모양인데...

리브스의 의도가 무엇이건, [블러드 비스트의 복수]는 '좋은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놓고 코미디로 만들었다고 해서 이 영화의 유치함이 지워지는 건 아니죠. 60년대에도 불쾌했을 강간 시도 장면 같은 건 지금은 더 불쾌하고요. 조건이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바바라 스틸의 이름을 박아놓았으면서 스틸이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면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다국적 선정영화 특유의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종류의 못만든 영화들을 보면서 낄낄거리는 취향이 없다면 굳이 챙겨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19/03/11)

★☆

기타등등
블루레이에는 바바라 스틸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정작 이 영화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감독: Mike Reeves, 배우: Barbara Steele, Ian Ogilvy, Joe "Flash" Riley, Ennio Antonelli, John Karlsen, Mel Welles, 다른 제목: The She Beast, Il lago di Satana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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