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 코난은 근육질 마마보이 펄프작가였던 로버트 E. 하워드가 1930년대에 창조한 주인공으로, 칼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지금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고대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액션 영웅입니다. 하워드는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여러 편의 단편들을 써서 [위어드 테일즈]에 발표했는데, 작가의 자살 이후에도 코난이 이야기는 작품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꾸준히 나오고 있죠.

전 하워드의 원작 소설들은 번역된 걸 다 읽은 거 같고, 82년에 나온 밀리어스의 [코난] 영화를 봤고, 마블 만화책도 친척 것을 빌려 몇 권 읽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라 그렇게 기억에 남거나 뚜렷하게 구별이 가능한 작품들은 없어요. 대충 코난이 거대한 초자연적 괴물이나 악당들을 묵사발로 만드는데, 가끔 옆에는 헐벗은 여자들이 있는 그림만 그려질 뿐이죠. 그래도 하워드는 (그의 친구였던 러브크래프트처럼) 굳이 좋아하지 않아도 계속 모방하고 인용하고 이야기하게 되는 그런 작가이긴 합니다.

마커스 니스펠의 [코난: 암흑의 시대]는 하워드가 그린 적 없는 코난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이건 밀리어스의 영화도 마찬가지였던가요. 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굳이 코난의 탄생담과 사연을 들려주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워드의 코난은 언제나 현재형인 캐릭터인데 말이죠. 전 그가 그렇게 과거의 앙금을 품고 다니는 캐릭터 같지는 않습니다.

하여간 영화에서는 코난의 아버지와 부족들은 칼라 짐이라는 마법사 악당에게 살해당하고, 살아남아 근육빵빵 어른이 된 코난은, 마녀였던 죽은 아내를 부활시켜 하이보리아를 정복하려는 칼라 짐에 맞서 싸웁니다. 여기에 타마라라는 순수혈통의 무녀가 등장하는데, 칼라 짐은 아내를 부활시키는데 타마라의 몸을 이용하려 하고, 엉겁결에 끼어든 코난은 타마라를 구출하게 되지요.

하워드 사후 코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니스펠의 [코난]은 하워드의 원작과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하워드의 원작에 나오는 몇몇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긴 해요.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굳이 [코난]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하이보리아가 존재하는 데에는 굳이 하워드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요. 단지 전 이 영화의 호러적인 분위기는 밀리어스의 영화보다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코난]은 호러물이니까요. 설정부터가 멸망한 고대문명의 사람들이 그 이전에 멸망한 고대문명의 컴컴한 유산에 깔려 괴롭힘을 당한다는 거 아닌가요.

전 영화의 도입부가 가장 좋았습니다. 아까는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라고 투덜거렸지만, 초반에 나오는 어린 코난은 상당히 강렬한 캐릭터였어요. 특히 코난이 타고난 전사임을 보여주는 살육 장면은 그렇습니다. 주인공이 근육빵빵 어른이 아닌 가냘픈 소년이어서 더욱 캐릭터가 강하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죠.

어른 코난이 나오는 후반부는 그에 비하면 심심하고 흐릿합니다. 각본가들은 코난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노예들을 구출하는 초반부터 이 캐릭터는 낯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것도 아니에요. 그냥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죠. 영화는 복수극과 구출극을 위해 의무방어적인 스토리를 끌어가긴 하는데, 이것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할 건 다 하지만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에너지는 흩어지고 개별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클라이맥스는 그냥 약하고요.

제이슨 모모아의 코난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전 오히려 슈왈제네거보다 괜찮은 거 같습니다. 적어도 대사는 제대로 읊고 감정 표현도 올바르고 액션 연기도 낫습니다. 외모도 그럴싸해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슈왈제네거의 외모가 그렇게 코난에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단 관상용으로 몸 만드는 사람의 근육과 몸 써서 생긴 근육은 모양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슈왈제네거의 몸은 지나치게 인공적이에요. 어차피 관상용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모모아 쪽이 캐릭터에 더 맞죠. 단지 한 시대의 아이콘인 슈왈제네거와는 달리, 모모아는 카리스마나 스타성이 한참 딸립니다. 이건 극복하기 어려워요.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어둡다는 것입니다. 내용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화면 이야기죠. 러닝타임 내내 조명을 반쯤 끈 컴컴한 그림으로 일관하는데, 배우 얼굴도 잘 안 보이고 액션도 잘 안 보이고 그렇습니다. 거의 그림자극 같아요. 그렇다고 3D 효과가 특별하게 좋은 것도 아니고요. 초반 몇 분을 제외하면 거의 인식이 안 되는 수준이죠. 아무리 호러이고 3D라도 이렇게 어둡기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12/03/27)

★★

기타등등
계획대로라면 로즈 맥고원은 여기서 마녀 역할을 하는 대신 [레드 소냐]에 출연하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감독: Marcus Nispel, 출연: Jason Momoa, Rachel Nichols, Stephen Lang, Ron Perlman, Rose McGowan, Bob Sapp, Leo Howard

IMDb http://www.imdb.com/title/tt08164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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