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싱어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고전 동화를 특수효과로 범벅이 된 현대식 액션물로 각색한다는 괴상한 유행의 끝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유행에 속한 영화로는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 [헨젤과 그레텔] 같은 영화들이 있죠. 전 둘 다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썩 재미있게 봤습니다. 걸작은 아니지만 예고편과 계획만 듣고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어요.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 역사와는 전혀 상관 없고 심지어 18세기까지의 테크놀로지와 패션을 갖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세계의 영국 역사로 수렴되는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땅에서 사는 거인들이 지상의 인간과 전투를 벌이는데, 에릭이라는 왕이 거인들을 조종하는 왕관을 만들어 그들을 다시 자기 세계로 돌려보내죠. 당시 지상과 거인의 땅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 콩나무를 만드는 콩들은 에릭 왕의 무덤에 매장되었는데, 그게 도굴당하면서 우리가 아는 [잭과 콩나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물론 그대로 진행되는 건 아니에요. 장편 액션 영화에 맞게 각색되고 정치적으로 교정된 이야기죠.

이 영화에서 제 마음에 들었던 건, 영화가 지나친 '할리우드식 현대화'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셜리 듀발의 동화극장] 정도의 '정치적 공정성'이 개입된 건 사실인데, 살짝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배려가 있어야 현대 관객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죠. 옛날 동화 속 사람들은 좀 괴상하잖습니까. [잭과 콩나무]의 주인공만 봐도 사기꾼에 도둑놈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컴퓨터 그래픽을 잔뜩 쓴 3D 액션 영화로 만들었으면서도 예스러운 '모험물'의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현란한 와이어액션으로 불가능한 파괴를 일삼는 할리우드식 액션 영웅이 아닙니다. 운이 엄청 좋고 운동신경도 어처구니 없이 좋으며 종종 물리법칙을 위반하긴 하지만, 그는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이며 그의 모험도 그 수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폭력과 학살의 테크닉보다는 용기와 명예와 같은 고전적인 덕목이 더 높이 평가되는 영화지요.

거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썩 그럴싸한 괴물들입니다. 예고편으로 봤을 때, 전 이들이 지나치게 CG 티가 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로 보니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점은 아니더군요. 이 영화 속의 거인들은 거대하게 부풀린 극사실주의 조각상과 같은 존재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히려 어색한 디테일 묘사가 더 어울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묘사 때문에 더 거대해보였지요. 특수효과의 묘사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이들이 고전적인 '거인'의 묘사에 충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쓸데 없는 익살 같은 걸 부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희극적이고,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 없이도 충분히 무서운 존재들이었지요.

아이맥스 3D가 과연 이 영화에 꼭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아이맥스에 올인할 생각이었다면 와이드스크린은 포기해야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제 영화 경험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마 드문드문 눈에 뜨이는 3D 때문이 아니라 거인들의 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이맥스의 해상도 때문이었겠지만요. (13/03/02)

★★★

기타등등
리처드 로퍼는 거인 세계에 왜 여자들이 없는지 궁금해했습니다. 하긴 환상물과 SF를 쓰는 작가들은 여자들이 없는 세계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독: Bryan Singer, 배우: Nicholas Hoult, Eleanor Tomlinson, Ewan McGregor, Stanley Tucci, Bill Nighy, Eddie Marsan, Ewen Bremner, Ian McShane, Christopher Fairbank,  Simon Lowe

IMDb http://www.imdb.com/title/tt13516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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