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감독 (2015)

배우 문소리는 옛날에 출연한 적 있는 영화의 감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례식장에 갑니다. 텅빈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건 감독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문소리와 함께 그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배우 한 명. 문소리와 그 배우가 감독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 감독의 신작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신인 여자배우 한 명이 찾아옵니다.

[최고의 감독]은 문소리가 배우 문소리 캐릭터를 내세워 만든 단편 3부작 중 마지막 편입니다. 문소리 자신은 3부작을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일관성이면 3부작으로 묶여도 이상하지 않죠. 세 편 모두 자신을 재료로 만든 동일한 캐릭터가 역시 자기가 속해있는 세계를 재료로 만든 우주에서 벌이는 소동극이니까요. 어, 이렇게 쓰니까 은근히 홍상수스러운 게...

앞의 두 편에서와는 달리 [최고의 감독]에서 문소리는 중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이미 세상을 뜬 감독이죠. 세 배우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영화를 한 편밖에 찍지 못한 모양이고 그 영화도 90년대 일본 영화의 짝퉁이었으며, 암만 생각해도 그리 좋은 감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사람은 좋았던 모양인데 그게 여자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익숙하네요.

홍상수 영화에서와는 달리 문소리는 감독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캐릭터에게 극단적으로 냉정하게 굴거나 구질구질한 변명을 덧붙일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대신 한걸음 떨어져서 영화감독이라는 예술가는 뭐하는 사람일까, 그가 만드는 예술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가볍지만 진지하게 묵상합니다. 결말 부분에서는 자칫 감상적으로 빠질 수도 있어보이는데, 다행히도 앞에 쌓아놓은 코미디가 만만치 않아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GV에서 문소리는 [최고의 감독]이 자신의 마지막 감독작이 될 거라고 말하더군요. 하긴 대학원 과제였고 배우가 본업인 사람이니 이상한 말은 아니죠. 하지만 세 단편 모두 이야기와 캐릭터의 재미가 상당했던 걸 생각해보면 여기서 끊는 건 좀 아쉬운 것 같습니다.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지만 그래도 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성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5/12/02)

★★★

기타등등
세 편을 이어서 논스톱으로 틀어도 될 거 같은데, 두 번째 영화가 화면비율이 맞지 않죠...

감독: 문소리, 배우: 문소리, 윤상화, 전여빈, 이승연, 다른 제목: The Best Director

IMDb http://www.imdb.com/title/tt139041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3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