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The Butler (2013)

2013.11.15 13:41

DJUNA 조회 수:8632


리 다니엘스의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는 아이젠하워 시절부터 레이건 때까지 백악관에서 집사로 일했던 세실 게인즈라는 남자의 일대기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백인 농장주에게 엄마가 겁탈당하고 아빠는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동정하던 농장주의 엄마가 그를 안으로 불러들여 ‘검둥이 하인’으로 훈련시켰고 나중에 독립한 그는 그 기술을 살려서 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했어요. 일을 잘 해서 워싱턴의 엑셀시어 호텔로 직장을 옮겼고 거기서 또 백악관 직원의 눈에 들어 백악관 집사로 스카우트되었고 그 뒤로 거기서 34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대통령들과 친분을 쌓았고 레이건 시절에는 낸시 레이건의 초대를 받아 국빈급 만찬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둘 두었는데, 한 명은 대학생 때부터 인권 운동을 했고, 다른 한 명은 베트남에 참전했습니다. 영화가 그의 백악관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두는 건 세실 게인즈와 인권 운동하는 아들의 갈등이고요.

그런데 이게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영화 시작 전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라는 자막이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이런 말이 무슨 의미로 통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이야기가 실화치고는 지나치게 편리하게 흐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실화가 허구보다 더 가짜 같은 경우도 꽤 많기는 하지만 이건 좀 심했어요.

그래서 검색을 해봅니다. 세실 게인즈의 모델이 된 사람은 유진 앨런이라는 백악관 집사입니다. 그는 정말 아이젠하워 시절부터 레이건 시절까지 백악관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영화에 나온 것 같은 끔찍한 일은 겪지 않았고 백악관에서도 처음부터 집사로 일한 게 아니라 밑에서 조금씩 올라가 승진한 거라고 합니다. 아들은 하나 있었는데 영화가 그린 것처럼 과격한 운동권이 아니라 공무원이었다고 해요. 다시 말해, 게인즈의 경력은 유진 앨런의 것과 꽤 비슷한 편이지만 드라마는 그냥 허구입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는 완전히 허구라고 쳐도 지나치게 인위적입니다. 그러기엔 실존인물들과 실제 사건들이 너무 많이 나오죠. 거의 [포레스트 검프] 수준인데, [포레스트 검프]와는 달리 [버틀러]에는 허구와 현실을 정리하고 구분할 수 있는 유머의 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역사를 그냥 지나칠 뿐이지만 [버틀러]의 인물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 때문에 영화는 종종 감상적인 거짓말처럼 보여요. 백악관에서 집사로 일한 남자의 일생이 흘러가다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의 구조는 그럴싸하긴 하지만 워낙 영화의 이야기를 크게 잡아서 가짜 승리담처럼 보이고요.

세실 게인즈 역의 포레스트 위테이커와 그의 아내 글로리아 역의 오프라 윈프리는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캐릭터와 드라마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요. 이들 앞으로는 대통령을 연기하는 수많은 카메오들이 지나치게 커다란 장식물처럼 등장했다가 퇴장하는데, 다들 그렇게 닮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존 큐색은 지금까지 닉슨을 연기한 배우들 중 가장 모델과 안 닮은 사람일 거예요. 그나마 낸시 레이건으로 나온 제인 폰다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역시 기대만큼의 비중은 없습니다.

[버틀러]에 대한 제 실망은, 이 영화가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 영화이기 때문에 조금 더 컸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스의 전작 [프레셔스]가 가진 거친 힘을 기억하면 더 아쉽고.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버틀러]는 의도가 좋고 선량하지만 지나친 감상주의와 편리하게 조작된 드라마 속에 감금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13/11/15)

★★☆

기타등등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라는 제목은 조악한 걸 넘어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막에서는 butler를 집사로 번역하는 대신 그냥 버틀러라고 하더군요.


감독: Lee Daniels, 배우: Forest Whitaker, David Banner, Michael Rainey Jr., Mariah Carey, Alex Pettyfer, Vanessa Redgrave, Aml Ameen, Jim Gleason, Oprah Winfrey, David Oyelowo, Terrence Howard, Cuba Gooding Jr., Lenny Kravitz, Robin Williams, John Cusack, James Marsden, Minka Kelly, Liev Schreiber, Nelsan Ellis, Alan Rickman, Jane Fonda, 다른 제목: Lee Daniels' The Butl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32777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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