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파올로는 신작을 쓰기 위해 에이전트가 소개해준 시골집에 박혀있다가 우연히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듀나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납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여기엔 작은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듀나는 뱀파이어였어요. 듀나에게 물린 파올로는 뱀파이어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만 이들 사이에 방해꾼이 끼어듭니다. 네덜란드에서 큰 사고를 치고 돌아온 듀나의 동생 미미가 피닉스의 농장에 가기 전에 일주일만 머물겠다며 언니를 찾아온 것이죠.

잰 카사베티스(존 카사베티스와 지나 롤랜즈의 딸입니다)의 [키스 오브 더 댐드]의 줄거리가 익숙해보인다면, 영화를 보시면 그 익숙함의 출처가 확인될 겁니다. [키스 오브 더 댐드]는 작정하고 70년대 유로 트래쉬 영화들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그 왜, 미모의 헐벗은 배우들이 뱀파이어로 나와 야시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영화들 있지 않습니까. 특히 고 장 롤랭이 그런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죠. 카사베티스는 스토리만 빌려 온 게 아니라 음악에서부터 연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도 세 여자주연배우들을 몽땅 프랑스어 사용자로 캐스팅했고요. 들여다보면 그 이외에도 수많은 인용과 오마주들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순전한 모방만은 아닙니다. 카사베티스만의 목소리가 있어요. 일단 [키스 오브 더 댐드]는 롤랭의 영화보다 훨씬 여성주도적입니다. 이 영화 속 여자주인공들은 롤랭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강단이 있어요. 이들의 욕망과 행동도 보다 선명하게 그려지고요. 듀나와 파올로의 관계 역시 듀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영화를 [트와일라잇]과 그 이후 세대 유행에 대한 야유로 읽을 수도 있을 겁니다. [키스 오브 더 댐드]의 뱀파이어들은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들처럼 '정치적으로 공정한' 삶을 살고 있어요. 사람 피를 마시지 않고 동물의 피와 인조혈액으로 살면서 언젠가 주류사회에 받아들여지길 바라고 있죠. 영화는 이 아슬아슬한 세계에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야수인 미미를 밀어넣고 깽판을 치게 하는데, 그게 꽤 귀엽고 신나는 구석이 있습니다. 전 갑갑한 원칙주의자인 듀나보다 미미가 더 좋더군요.

전 [키스 오브 더 댐드]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70년대에 나왔던 예술영화인 척 하는 야시러운 호러 영화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제한합니다. 그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 본다면 이 영화는 생기 없어 보일 수도 있고, 뻔할 수도 있어요. 인용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꽤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알고 본다고 다 좋아할 필요는 없겠죠. 롤랭의 영화가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13/07/20)

★★★

기타등등
1. 네, 주인공 이름이 Djuna입니다. 그것도 D를 발음해서 듀나. 가족 만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는 별로였지만.

2. 감독 아버지의 영화 [오프닝 나이트]의 노골적인 오마주가 있습니다.


감독: Xan Cassavetes, 배우: Joséphine de La Baume, Milo Ventimiglia, Roxane Mesquida, Anna Mouglalis, Michael Rapaport, Riley Keough, Ching Valdes-Aran

IMDb http://www.imdb.com/title/tt195943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7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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