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앤 로사 Ginger & Rosa (2012)

2014.05.10 15:02

DJUNA 조회 수:6917


1960년대는 십대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섹시한 성장물을 만들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죠. 냉전시대 핵공포와 섹스 혁명이 겹쳤으니 아직 덜 여문 십대 아이들의 두뇌가 세상을 얼마나 자극적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진저 앤 로사]는 샐리 포터의 자전적인 영화지만 그래도 시대 배경을 잡기 위해 조금 조정을 했을 겁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포터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요.

진저와 로사는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떨어져본 적이 없는 단짝 친구입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 사태가 일어나 전지구가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62년이 되자 둘의 우정은 이전 같을 수가 없습니다. 반핵운동을 하고 시를 쓰면서 세상에 맞서는 진저와는 달리 로사는 로맨틱한 사랑에 집착하는데 하필이면 그 상대가...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인가요? 도입부 십여분만 봐도 눈치챌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제목은 [진저 앤 로사]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진저입니다. 로사는 진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환경의 일부이지, 주인공으로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못 합니다. 로사의 선택도 선택 그 자체보다는 그 선택이 진저에게 끼치는 영향의 의미가 더 크죠.

흔들리는 가족 관계, 부모와의 갈등, 우정의 위기, 세상에 대한 분노. 영화는 이런 종류의 성장물들이 거쳐야 할 거의 모든 통로들을 지나칩니다. 단지 진저에겐 로맨스가 빠져있는데, 그것까지 포함시키기엔 로사의 비중이 워낙 크고 로맨스는 이 캐릭터의 담당이니 거기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었겠죠.

영화의 러닝타임은 엔드 크레딧까지 포함해서 90분으로 성장물치고는 조금 짧습니다. 할 이야기는 거의 다 하긴 하지만 로사의 선택이 주는 파장이 다른 것들을 묻어버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죠. 지나치게 멜로드라마가 되는 단점도 있고요.

이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진저를 연기한 엘 패닝의 존재감입니다. 연기를 잘 하고 캐릭터와 자신을 완벽하게 일치시키고 있으며 진짜로 예뻐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엘 패닝이라는 배우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영화가 배우를 진짜로 예뻐한다면 티가 날 수밖에 없는데, [진저 앤 로사]가 바로 그래요. 카메라와 배우의 연애질이 너무 노골적이라 관객들이 방해꾼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죠. (14/05/10)

★★★

기타등등
영국이 무대지만 배우들은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엘 패닝,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알렉산드로 니볼라는 미국인, 앨리스 앵글러트는 호주인. 알렉산드로 니볼라야 영국인을 연기하는 것에 익숙한 배우지만, 영국 관객들의 귀에 다른 사람들의 억양이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군요. 검색해봤는데 의견은 다양합니다. 괜찮다는 것에서부터 외계인말처럼 들린다는 것까지.


감독: Sally Potter, 출연: Elle Fanning, Alice Englert, Christina Hendricks, Alessandro Nivola, Timothy Spall, Oliver Platt, Annette Bening, Jodhi May, 다른 제목:

IMDb http://www.imdb.com/title/tt211529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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