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2013.09.25 01:21

DJUNA 조회 수:22737


몇년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우디 앨런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곧장 뉴욕으로는 가지 않았어요. 그의 신작 [블루 재스민]의 무대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뉴욕도 회상 장면을 통해 꽤 많이 나오긴 하지만, 주인공 재스민이 현재를 사는 곳은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재스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많은 사업가인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뉴욕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바람둥이일 뿐만 아니라 남의 돈을 등쳐먹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재스민은 뉴욕을 떠나 동생 진저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시놉시스만 읽으면 재스민의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직한 남편 때문에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새출발하면서 새 남자친구도 생기고 새 직업도 생기고... 하여간 이렇게 새 인생을 여는 밝은 이야기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재스민이 나오는 장면을 몇 분만 봐도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지요. 재스민은 그런 장르에 속할 수 없는 괴물입니다. 엄청난 구경거리이지만 호감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우디 앨런은 [블루 재스민]을 우디 앨런 버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만들었습니다. 재스민은 당연히 블랑쉬 뒤브아고요. 진저는 스텔라, 진저의 전남편과 애인은 모두 스탠리 코발스키라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영화의 결말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만큼이나 어둡습니다. 

블랑쉬 뒤브아가 그렇듯, 재스민은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와 기만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 자기기만이 너무나도 단단하기 때문에 거의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 정도죠. 돈많은 남편이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믿었을 때만 해도 그 기만은 실제 삶과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곁을 떠난 뒤에도 자기기만은 부서지지 않은 채 남아 보호막처럼 재스민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단지 진짜 보호막과는 달리 이런 건 재스민의 새 인생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죠.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중심인 영화입니다. 스토리를 포함한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케이트 블란쳇의 재스민 연기에 집중되고 있죠. 블란쳇의 재스민은 장엄한 서커스입니다. 어처구니 없고 불편하지만 거의 엄숙하기까지 한 비극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비극이죠. [블루 재스민]은 우디 앨런의 영화 중 가장 '고전 비극'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13/09/25)

★★★☆

기타등등
진저의 남편 오지를 앤드루 다이스 클레이가 연기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하긴 [프리티 인 핑크] 시절 이후로는 이 배우가 뭐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감독: Woody Allen, 배우: Cate Blanchett, Alec Baldwin, Peter Sarsgaard, Sally Hawkins, Andrew Dice Clay, Tammy Blanchard, Bobby Cannavale, Louis C.K.

IMDb http://www.imdb.com/title/tt233487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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