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2012.08.04 12:59

DJUNA 조회 수:11898


[대학살의 신]의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 [Le Dieu du carnage]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히트한 뒤에 런던에서 크리스토퍼 햄튼의 번역으로 상연되었고, 그 뒤에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미국판으로 번안되어 상연되었는데, 모두 히트했죠. 이번 영화에서 폴란스키가 사용한 각본은 새 번역과 번안으로,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브로드웨이판과 다릅니다. 하지만 기본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를 게 없을 거예요.

뉴욕에 사는 두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아이들이 싸우다가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막대기를 휘둘러 상처를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친 아이가 사는 아파트에서 만났어요. 이들은 처음에는 예의바르게 문명인처럼 행동하지만 조금씩 흥분하다가 결국 폭발해버립니다. 이게 이야기의 전부예요.

영화에서 구체적인 내용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친 아이의 상황이나 부모의 관심과 직업과 같은 건 스토리를 쌓기 위한 벽돌인데, 이 벽돌은 얼마든지 다른 내용의 벽돌로 대체될 수 있는 거죠. 처음에는 스스로가 코코슈카와 후지타를 감상할 줄 아는 교양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 구토 사건과 같은 난처한 사고들과 알코올이 개입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가 모두 폭발하고 만다는 걸 보여주는 내용이라면 무엇이어도 상관없지요.

영화에서 중요한 건 내용보다는 리듬입니다. 영화는 척 봐도 째깍째깍거리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터지려면 시간이 남았고 잘 다루면 얼마든지 다른 데에 옮겨놓고 안심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관객들은 이 폭탄이 결국 주인공들 앞에서 터지고 말 거라는 걸 알거든요. 그 때문에 무지 얄미운 서스펜스가 만들어집니다. 영화는 계속 주인공들을 안전지대로 보내는 척하면서 계속 조금씩 폭탄 옆으로 불러들여요. 잘난 척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작가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인 거죠.

녹화된 연극입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단막극을 거의 그대로 영화에 옮겼어요. 초반과 후반의 공원장면을 제외하면 무대인 아파트를 떠나지도 않고요. '영화적'이 되거나 여기에 감독 자신의 무언가를 더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원작의 매체를 존중하는 거고, 곧장 말하면 재미있게 본 연극의 대체물을 만드는 것 이상의 야심은 없는 거죠. 어떻게 봐도 이 작품의 효과는 연극의 힘을 넘어설 수 없어요. 물론 대부분 관객들에겐 케이트 윈슬렛, 조디 포스터, 크리스토프 발츠, 존 C. 라일리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는 연극을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받는 것이니, 썩 괜찮은 대체물입니다.

이런 식의 연극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의 연기력에 의지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전문 배우들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보면 이들 네 명이 심술궂은 악동들처럼 자기 캐릭터들을 조금씩 박살내며 흥겨워하는 게 보입니다. 폴란스키 역시 그런 그들을 연출하며 즐겼을 거고,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였을테니, 손해 볼 사람은 아무도 없는 즐거운 소일거리인 겁니다. (12/08/04) 

★★★

기타등등
뉴욕이 무대인 영화지만 폴란스키의 사정상 프랑스에서 찍었죠. 하긴 어디에서 찍어도 상관없는 영화이긴 합니다만. 


감독: Roman Polanski, 출연: Jodie Foster, Kate Winslet, Christoph Waltz, John C. Reilly

IMDb http://www.imdb.com/title/tt169248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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