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2013)

2013.09.11 23:30

DJUNA 조회 수:24823


천재 관상가 내경은 처남 팽현, 아들 진형과 함께 산 속에 칩거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관상가 기생으로 유명한 연홍이 찾아와서 스카우트 제안을 합니다. 역적의 자손이라 벼슬을 하지 못하는 그는 낼름 그 제안을 물고 한양으로 올라가지요. 내경이 용한 관상쟁이로 이름을 떨치자 당대의 권력가 하나가 그에게 접근해 오는데, 그는 바로 김종서입니다.

여기서부터 내경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유정난의 역사와 하나가 됩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흥분과 갑갑함을 동시에 느낄 것입니다.  우선 평범한 관상쟁이의 성공담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결론이 나버린 이 커다란 이야기 속에서 내경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갑갑함은 한재림의 [관상]에서 중요한 축입니다. 내경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반대지요.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경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정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보며 갑갑해하는 관객들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관상쟁이라는 위치도 쉽게 지식인과 언론인의 메타포로 전환되는데, 이건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습니다. 분명 특화시켜 노리고 있는 관객층이 있죠.

영화는 공식적인 한국 드라마 영화의 순서를 따릅니다. 익살스러운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눈물 빼는 비극으로 끝나지요. 익숙한 역사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구조가 유려하게 짜여 있습니다. 뜬금없이 던져지는 프롤로그는 후반부의 드라마와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몇몇 중요한 실존인물들이 허구의 인물들과 섞이는 테크닉도 좋습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현대 역사와의 연결점도 좋은 편입니다. 현대 관객들을 적절하게 자극하면서도 역사 이야기로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140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꾸려가는 이야기의 재미가 상당해요.

캐스팅은 대체로 좋습니다. 송강호나 백윤식과 같은 노련한 배우들은 자기 실력을 주저없이 보여주고 있고, 이종석처럼 경험부족한 젊은 배우도 적절한 연기지도와 캐릭터 때문에 튀지않고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단지 수양대군을 연기한 이정재는 조금 기가 약해보여 아쉽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이병우의 음악입니다. 음악의 재료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어 있어 효과를 많이 깎아 먹어요. 코미디 음악이 가장 나쁘지만 관객들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다른 음악도 문제가 많습니다. 이병우의 음악이 이렇게 잘못 쓰인 건 전에 본 적이 없어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13/09/11)

★★★

기타등등
진짜로 관상학이 의미있는 학문이라면 전문 관상가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건 연예인, 연예인, 연예인상뿐이겠죠.


감독: 한재림, 배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다른 제목: The Face Reader

IMDb http://www.imdb.com/title/tt30080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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