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킹 슬리핑 뷰티]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끌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흥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물론 디즈니에서 제작했고 [미녀와 야수]와 [라이온 킹]의 프로듀서인 돈 한이 감독과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이 정도면 자사홍보용 보도자료죠. 회사 강당에서 사원들에게 오리엔테이션용으로 틀어도 이상할 거 없는.

그래도 전 한 번 이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전 [디즈니랜드]를 통해 이런 자뻑용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랐어요. 그러니까 제가 보고 싶었고 기대했던 건 [디즈니랜드]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뻑용 보도자료였지 진짜 진지한 다큐멘터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기본 이야기도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타란의 대모험]으로 죽을 쒔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서가 마이클 아이스너, 제프리 카첸버그, 피터 슈나이더와 같은 외부 인사의 영입을 통해 체질 개선을 했고, 그 결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과 같은 히트작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아, 우린 참 잘 났어요.

그러나 이 드러난 줄거리를 들려주는 영화의 태도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라이언 킹]의 음악을 녹음하는 엘튼 존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흥기 영광의 절정이죠. 당연히 이는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성공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의 이야기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반대로 갑니다. 이 영광을 만들어 낸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와해의 조짐을 보여주죠. 쇠락의 가을 분위기로 이야기의 문을 여는 영화인 것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들의 주인공은 감독이나 애니메이터가 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요. 하지만 돈 한의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아이스너나 카첸버그와 같은 경영자들입니다. 창작자들 중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들은 하워드 애쉬먼과 같은 외부인이고요.

이것은 돈 한이 디즈니의 내부인들을 덜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한 자신이 부흥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디즈니에서 일해왔던 내부인이니까요. 그는 바로 그 자신을 포함한 내부인의 관점에서, 정체된 디즈니를 다시 살리겠다고 뛰어든 외부인들을 애증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과 감독들은 종종 '우리'의 대명사로 시작되는 내레이션 자체로 존재합니다. 

따로 찍은 인터뷰는 오디오 인터뷰가 전부인 영화입니다. [웨이킹 슬리핑 뷰티]를 차지하는 영상들은 거의 모두가 자료화면입니다. 뉴스나 영화클립도 있지만, 홈무비나 디즈니의 애니메니터들이 조선왕조실록 수준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남긴 캐리커처들의 비중도 만만치 않죠. 물론 여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돈 한의 내레이션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애수와 유머가 절묘한 비율로 섞여 있으며 당황스러울 정도로 개인적입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영화는 5,60년대에 만들어졌던 할리우드 뒷이야기를 담은 멜로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들이 만든 영화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업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과 개성,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드라마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적절하게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담고 있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하워드 애쉬먼의 죽음이 애잔한 휴지기라면, 말없이 내부의 갈등을 중재하던 프랭크 웰즈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아이스너와 카첸버그의 알력이 폭발하는 부분 같은 건 신의 각본이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어버릴 정도로 타이밍이 적절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죠.

당시 디즈니 영화의 제작 과정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궁금하다면 개별 영화의 블루레이나 DVD의 부록을 보면 되지요. 그리고 그런 부록들은 [웨이킹 슬리핑 뷰티]가 그린 드라마 같은 건 담고 있지 않지요. 돈 한이 이 영화를 만든 것도 그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12/11/12)

★★★☆

기타등등
팀 버튼과 존 라세터의 젊은 시절 모습이 나옵니다. 팀 버튼은 당시에도 팀 버튼스러웠군요.

감독: Don Hahn, 출연: Don Hahn, Roy Edward Disney, Peter Schneider, Jeffrey Katzenberg, Michael Eisner, Gary Trousdale, John Musker, Kirk Wise, Ron Clements, Howard Ashman, Alan Menken

IMDb http://www.imdb.com/title/tt115996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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