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의 그대 (2013)

2013.05.15 21:03

DJUNA 조회 수:10860


강진아는 2009년에 [백년해로외전]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든 적이 있죠.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친구와 그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남자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 몇 년 동안 만들어진 국내 단편영화들 중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이고, 2011년에 [촌철살인]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묶여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환상속의 그대]는 [백년해로외전]의 장편버전입니다. [백년해로외전]의 주연배우 한예리가 역시 같은 캐릭터로 참여하고 있고요. 단지 영화의 구조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백년해로외전]이 죽은 여자와 산 남자를 일대일로 보여준다면, [환상속의 그대]는 죽은 여자의 친구 캐릭터가 한 명 늘었어요. 그 때문에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원작단편과는 달리 [환상속의 그대]는 단도직입적으로 진상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차경은 남자친구 혁근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같이 살던 친구 기옥의 집에 잠시 들렀다가 기옥의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버렸지요.

이후부터 기옥과 혁근은 연옥에서 지옥 사이의 어떤 곳이 되어버립니다. 두 사람은 모두 차경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때문에 죽은 사람을 차마 떠나 보내지 못해요. 차경은 여전히 과거를 끌고 다니며 그들 주변을 맴돌고, 두 사람은 그 안에서 서로를 가둬버립니다.

영화는 단편보다 훨씬 어두워졌습니다. 단편에서는 죽은 사람과 그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산 사람만 있었고 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복수가 되자 이들은 작정하고 서로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둘 다 아프지만, 고통의 정도와 증세가 진짜로 심한 사람은 친구 기옥입니다. 아마 이영진이 최악의 약자로 나오는 영화일 거예요. 차경에게 고장난 자전거를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기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엄청나게 서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건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죽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겠죠. 사방에서 구박을 당하는 것도 당연한 일.

차경과 혁근 역의 한예리와 이희준이 원래의 기본기에 플러스를 얹은 좋은 연기를 보여줄 거라는 건 예상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도약을 보여준 건 이영진입니다. 이 배우에게 이처럼 생생한 캐릭터가 주어진 적은 지금까지 없었죠. 이영진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환상속의 그대]에는 [백년해로외전]의 깔끔한 완벽함은 없습니다. 고통과 혼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관객들은 이들이 제대로 정리될 거라는 기대도 없이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오가는 감정에 끌려가야 합니다. 종종 어처구니없이 재미있고, 심지어 웃기기까지도 하지만, 결코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니죠. [백년해로외전]에서 보았던 만족스러운 결말도 주지 않고, 그 영화에서처럼 예쁘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환상속의 그대]가 보여주는 덜컹거리고 종종 불편하기까지 한 애도의 여정이야말로 이런 입장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닐까요. (13/05/15)

★★★

기타등등
이영진이 다른 배우와 함께 있는데 더 '여자애' 같이 보인 건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예리가 특별히 보이시한 캐릭터였다는 건 아니에요. 한예리 캐릭터도 정말 여자애인데... 그래도 같이 있으면 이영진이 더 여자애 같습니다. 신기해요.

감독: 강진아, 배우: 이영진, 한예리, 이희준, 다른 제목: Dear Dolphin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Dear_Dolphin.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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