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2011)

2011.09.29 23:44

DJUNA 조회 수:20888


보통 순정만화처럼 순진무구한 로맨스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이한의 필모그래피에서 [완득이]는 조금 이질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서는 이한 자신의 개성보다는 원작인 김려령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의 개성이 더 크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 이한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자신이 다루는 매체로 옮기고 싶어하는 독자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영화는 완득이라는 고등학생과 담임선생인 동주의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완득이는 동네 교회에서 자길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선생을 제발 죽여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알고 보면 동주는 그가 의존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동주가 완득이네 집 이웃으로 이사오면서 둘은 어쩔 수 없이 밀접하게 얽히게 되고 그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한의 개성이 이 영화를 만드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초반의 회상 장면 같은 건 소설의 뻔뻔스러운 활기가 부족해서 전 좀 실망했어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원작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살짝 부족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이한의 태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 화려하다 할 수 없는 완득의 환경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랑, 일인칭 화자인 주인공의 껄렁한 화술을 통해 그의 세계를 상상하며 읽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어느 쪽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매체의 차이 같습니다.


영화의 각색은 충실한 편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완득이와 친구들은 한 살을 더 먹었고, 완득이의 엄마는 베트남인이 아니라 필리핀인입니다. 옆집 욕쟁이 아저씨에게는 무협소설 쓰는 동생이 하나 있어서 동주와 러브라인이 형성됩니다. 결말은 소설보다 더 맺어진 느낌이고요. 하지만 이 차이는 그렇게 분명히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원작의 이야기와 주제는 대부분 남아 있고 추가된 부분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유머가 풍부하고 쓸데없는 감상주의에 갇히는 일 따위는 없지요. 하지만 기승전결이 불분명하고 이야기가 스리슬쩍 능구렁이처럼 흐르다가 갑자기 끊어진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캐스팅은 바람직합니다. 유아인은 완득이를 연기하기엔 지나치게 예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히 껄렁한 불량기와 맹한 피해자의 느낌이 그럴싸하게 섞이니까 꽤 설득력 있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김윤석의 동수는 더 그럴듯합니다. 원작의 동주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들려는 의도와 그 캐릭터에게 올바른 일을 시키려는 의도가 충돌해서 캐릭터가 깨지는 구석이 있었죠. 김윤석이 들어가니까 이 균열이 사라집니다. 배우의 몸을 통해 하나의 온전한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완득이]는 외국인 노동자, 도시 빈민가, 장애인과 같은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에너지와 유머를 잃지 않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원작만큼 신나지는 않아도 결코 자기 무게에 넘어지지 않아요. 충실한 각색이면서도 종종 원작보다 나은 구석도 발견되고요. 제가 원작자라면 이 각색에 별 불만 없이 만족했을 것 같습니다. (11/09/29)


★★★


기타등등

전 완득이의 아버지를 연기한 박수영이 장애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작아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냥 좀 키가 작은 한국 아저씨 같았어요. 그 정도 키라면 아들이 부끄러워 할 정도는 아니에요. 꼽추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더더욱 아니고.

 

감독: 이한, 출연: 김윤석, 유아인, 박수영, 이자스민, 김상호, 김영재, 박효주, 강별, 다른 제목: Punch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Wandeugi.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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