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일렌서즈 The Silencers (1966)

2015.08.16 23:41

DJUNA 조회 수:2506


반 세기 전에는 제임스 본드라는 영국 스파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첩보물이 유행이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뜨자 별별 아류작들이 다 나왔는데, 몇 개는 대놓고 만든 패러디 코미디였어요.

그 중 하나가 딘 마틴이 주연인 [맷 헬름] 시리즈였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더 사일렌서즈]는 네 편이 나온 [맷 헬름] 시리즈 중 첫 번째 영화고요. 원래는 다섯 편이 나올 예정이었는데 마지막 영화는 끝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지요.

[맷 헬름] 시리즈의 원작은 1960년부터 시작해서 90년대까지 나온 도널드 해밀턴의 스파이 소설 시리즈인데, 제가 원작자였다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원작은 거의 대실 해밋 스타일의 냉정한 하드보일드인 모양이에요. 하지만 영화 시리즈는 딘 마틴의 개성에 맞춘 60년대식 헐렁한 코미디니까요. 캐릭터의 이름만 같고 나머지는 전혀 다르대요. 물론 저 같았다면 그랬을 거라는 거고 진짜 작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죠.

영화의 내용은 퉁체(말 그대로 통제란 의미인 거 같습니다)라는 중국인 악당이 이끄는 Big O라는 비밀조직이 뉴 멕시코의 핵실험장에 미사일을 쏘아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하고, 지금은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은퇴한 첩보원 맷 헬름이 불려나온다는 것입니다. 헬름은 중간에 적의 스파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게일 헨드릭스라는 여자와 얽히게 되는데, 결국 막판엔 둘이 Big O의 아지트로 끌려갔다가 세상을 구합니다.

이 줄거리 요약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액션이나 첩보의 비중은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다 합치면 20분 좀 넘으려나요. 순전히 본드걸만 보고 싶어서 007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이 쓴 007 팬픽 같아요. 첩보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60년대 할리우드 미인들의 몸매를 보여주고 싶어 환장한 영화입니다. 맷 헬름 자체가 그런 구경거리를 위한 핑계인 거죠. 두 명은 그러다가 한 시퀀스를 채 넘기지도 못하고 죽는데, 그 중 하나가 시드 셰리스 여사이니 슬프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딘 마틴은 이 영화에서 심각할 정도로 딘 마틴스럽습니다. 진짜로 진짜로 느끼해요. 그래도 이 사람은 가수일 때보다 배우일 때 덜 느끼한데, 시도때도 없이 딘 마틴의 노래가 영화음악으로 나오니 영화 내내 기름기가 줄줄 흐르죠. 중간에 게일이 자동차 라디오를 틀자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를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맷 헬름은 그것도 참지 못해서 딘 마틴의 노래가 나오는 방송국으로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노래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미인들과 부대끼지 못해 환장하고 있고요. 빙빙 도는 둥근 침대가 있는 헬름의 집에서부터 게일이 '섹스 자동차'라고 부르는 그의 못생긴 스테이션 웨건에 이르기까지 느끼하지 않은 게 없어요.

엄청나게 시대를 타는 영화입니다. 007 시리즈야 60년대 유행을 넘어 용하게 살아남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그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첩보물의 패러디까지 같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종종 꽤 웃기는 농담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래도 60년대 대중 문화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관대해야 그 농담을 보고 웃는 게 가능합니다. 겨우 반 세기 전이니 영화를 보기 전에 이론 무장을 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지만요. (15/08/16)

★★☆

기타등등
퉁체 역은 빅터 부오노란 배우가 맡고 있는데 정말 무성의한 옐로우페이스인데다가 배우 눈도 파란색이에요.


감독: Phil Karlson, 배우: Dean Martin, Stella Stevens, Daliah Lavi, Victor Buono, Arthur O'Connell, Robert Webber, James Gregory, Nancy Kovack, Roger C. Carmel, Cyd Charisse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09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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