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가와 에리코, 이와이 슌지, 나카야마 미호는 몇 년 전부터 파리를 무대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의 중심엔 나카야마 미호가 몇 년 전부터 파리에 살고 있다는 간단한 이유가 있었겠죠. 이미 프랑스에서 살면서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진 일본 배우가 한 명 있으니 그걸 써먹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키타가와 에리코의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입니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만들 계획이었다지만 스케줄 문제 때문에 계속 연기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는 동안 키타가와 에리코는 감독 데뷔작으로 [하프웨이]를 찍었고요.

영화는 여동생에게 억지로 끌려 파리에 온 사진작가 센을 주인공으로 시작됩니다. 동생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를 길에 버려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버리고, 센은 예약한 호텔 이름도 모른 채 센 강가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지요. 이 때 우연히 마주친 게 파리에 살면서 일본어 무가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아오이입니다. 둘은 이후로 며칠 동안 파리 시내와 아오이의 집을 오가며 관광을 하고 사진을 찍고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온스타일이나 홈스토리 같은 채널에서 낼 법한 여행이나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입니다. 나른하고 정갈하고 예쁜 분위기 속에서 예쁜 사람들이 뭔가 예쁜 곳을 돌아 다니면서 예쁜 일을 하는. 빈정거리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겁니다. 전 이게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이런 건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하죠.

영화는 링클레어의 [비포 선라이즈]와 많이 닮기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국의 도시에서 한없이 수다를 떠는 내용이죠. 단지 여기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은 동등했고 두 사람의 수다는 진짜로 듣는 재미가 있었죠. [새 구두를 사야해]는 둘 다 아닙니다. 일단 이 영화의 대사나 에피소드는 파리라는 도시를 이용하기 위한 의무방어의 느낌이 강해요. 두 주인공이 속을 털어놓는 후반부에도 대화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신세 한탄에 가깝고요.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은 전적으로 아오이 쪽에 기울고 있습니다. 처음엔 센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그는 결국 아오이의 드라마를 만들어주기 위한 예쁘장한 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아오이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부터 영화는 궤도에 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지만 아직 로맨스와 삶에 대한 희망이 있는 중년 프리마돈나의 아리아입니다. 영화의 모든 빛은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에 집중됩니다. 영화의 진짜 감정이 폭발하는 것도 이 부분이고요. 여기서부터는 가볍기 짝이 없었던 영화에도 무게가 생기기 시작하며 뻔한 파리의 관광명소들도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엄청난 영화는 아닙니다. 예고편에서 예상했을 법한 예쁜 관광지 영화죠. 하지만 그 안에는 드문드문 고개를 드는 예상 외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게 엄청나게 새롭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이죠.  (13/04/17)

★★★

기타등등
[파리 5구의 여인]에 이어 이 영화를 봤어요. 같은 도시인데도 두 영화의 파리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파리 5구의 여인]의 파리 쪽이 현실 세계의 파리와 더 가깝겠지요. [새 구두를 사야해]의 파리는 어쩔 수 없이 관광지니까.

감독: Eriko Kitagawa, 배우: Miho Nakayama, Osamu Mukai, Mirei Kiritani, Gô Ayano, Amanda Plummer, 다른 제목: I Have to Buy New Shoes

IMDb http://www.imdb.com/title/tt233072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8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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