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링턴가의 살인 10 Rillington Place (1971)

2011.04.23 22:02

DJUNA 조회 수:6784


실화입니다. 그것도 유명한. 리처드 플레이셔의 [릴링턴가의 살인]이 개봉되었을 때 대부분 관객들은 이 영화의 진행 과정과 결말에 대해 대충은 알고 극장을 찾았죠. 고로 내용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곧장 말해 스포일러가 있다는 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존 레지널드 크리스티라는 영국의 연쇄살인자입니다. 그는 1940년대와 50년대에 최소한 6명의 여자들을 자기 집으로 유인해서 가스로 기절시키고 교살한 뒤 뜰에 암매장하거나 집 안에 숨겼습니다. 희생자들 중에는 그의 아내 에셀도 있었는데, 아마 남편의 정체를 의심했기 때문에 살해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인죄로 체포되기 몇 년 전 그는 같은 건물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었습니다. 티모시 에반스라는 남자가 아내 베릴과 어린 딸 제랄딘을 죽인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그는 재판 내내 진범이 크리스티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유죄선고를 받고 1950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러다가 크리스티가 53년에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었으니, 진범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리처드 플레이셔의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냉정하고 차가운 포르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의 기획은 시작부터 음란합니다. 유명한 살인사건을 될 수 있는 한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를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건물에서 찍었으니까요. 이것만으로도 관객의 관음증이 폭발할 지경이지요.


플레이셔는 이 영화를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센세이셔널리즘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는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려 합니다. 대사 대부분은 공식 기록에서 가져오고 불필요한 자극도 없습니다. 이렇다고 포르노가 포르노가 아닌 어떤 것이 되는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이런 범죄실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최대로 사실적인 영화를 선호할 겁니다.


영화에는 분명히 집어낼 수 있는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베릴 에반스가 낙태를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크리스티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은 노동자 계급 여성들을 불법 시술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낙태 관련법 때문이겠죠. 티모시 에반스 사건은 사형제도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에반스 사건과 관련된 논란은 영국에서 사형제도 폐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그러나 관객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끄는 것은 제도보다 인간입니다. 존 레지널드 크리스티, 티모시와 베릴 에반스는 우리를 지옥의 파멸로 이끄는 인간적 결점의 집합소입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한마디로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티모시 에반스야 처음부터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바보라고 해도, 멀쩡한 사람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워 교수대로 보낸 악당인 크리스티 역시 그리 똑똑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가 정말로 똑똑했다면 처음부터 자기 집에 시체를 묻거나 자기를 살인범으로 지목할 증인을 남기지는 않았겠지요.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결코 탈출할 수 없는 끈적거리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리처드 어텐보로의 존 크리스티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악당입니다. 끔찍한 욕망을 품은 사악한 범죄자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대머리 아저씨. 그의 속삭이는 듯한 조용한 연기는 크리스티의 허약함을 증폭시킴으로써 오히려 그를 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보이게 합니다. (11/04/23)


★★★☆


기타등등

실제 사건과 영화의 무대가 된 건물은 촬영 직후 헐렸다고 합니다.

 

감독: Richard Fleischer, 출연: Richard Attenborough, Judy Geeson, John Hurt, Pat Heywood, Isobel Black, Miss Riley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673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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