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로저 코먼의 [공포의 작은 가게]가 세상에서 가장 빨리 찍은 장편영화라는 말이 돌았지요. 적어도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이었어도 지금은 아니겠죠. 그 기록을 누가 갖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여간 무지 빨리 찍은 영화인 건 사실입니다. 1박 2일 동안 영화 전편을 찍었어요. 나중에 약간의 재촬영이 있긴 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대단한 속도죠.

식인 식물 이야기입니다. 나름 전통이 있는 호러 소재죠. 이 영화의 괴물인 오드리 주니어는 그래비스 무쉬닉이라는 구두쇠가 운영하는 꽃가게에서 일하는 시모어라는 직원이 키우는 식물입니다. 오드리 주니어라는 이름은 시모어가 짝사랑하는 동료 직원 오드리에게서 따왔고요. 그런데 이 식물이 시모어의 피를 마시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시모어는 실수로 죽인 사람의 시체를 가져와 오드리 주니어에게 먹이고 식물은 이제 시모어에게 먹이를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는 동안 오드리 주니어는 동네에서 유명해지고 동네 경찰서 형사들은 실종사건을 캐기 시작합니다.

할리우드 전설을 먼저 접한 관객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빠른 촬영시간의 흔적을 찾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지나치게 술렁술렁 잘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긴 해도 당시 나온 다른 싸구려 영화보다 특별히 급하게 찍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건 코먼이 자기 일에 대해 잘 아는 노련한 장인이었기 때문이었겠죠. 정해진 시스템이 있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그 시스템에 익숙하다면 이 정도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의 작은 가게]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찰스 B. 그리피스가 하루만에 후닥닥 쓴 각본은 거칠기 짝이 없지만 살인과 식인 괴물이라는 소재와 코미디를 능숙하게 엮으면서 호러와 웃음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으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꽃을 먹는 손님처럼 어처구니 없는 농담용으로 끼워넣은 것 같은 재료들도 왁자지껄하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요. 이 자연스러운 재미 일부는 아마도 촬영 속도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질주하며 만든 작품들 특유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나중에 뮤지컬로 각색되었고 그 뮤지컬은 다시 프랭크 오즈에 의해 영화화되었습니다. 그 영화도 원작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요. 리메이크는 극장판과 감독판 결말이 다른데, 두 개 모두 원작과 또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결말을 가장 좋아해요.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리메이크 결말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19/10/21)

★★★

기타등등
잭 니콜슨이 마조히스트 치과 환자로 나옵니다. 니콜슨의 첫 로저 코먼 영화지요. 리메이크에서는 빌 머레이가 했던 역입니다.


감독: Roger Corman, 배우: Jonathan Haze, Jackie Joseph, Mel Welles, Dick Miller, Myrtle Vail, Karyn Kupcinet, Toby Michaels, Leola Wendorff, 다른 제목: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4033/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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