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가 언젠가 서부극을 만들 거라는 건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타란티노 자신은 그의 최초의 서부극 영화인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western이라고 부르는 대신 southern이라고 한답니다. 하긴 그렇게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게, 이 영화의 무대는 미국 '서부'가 아니라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미국남부입니다. 

영화는 두 편에서 중요한 고유명사를 가져왔습니다. 둘 다 그렇게 고증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어요. 우선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 장고가 있습니다. 이는 프랑코 네로 주연의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에서 가져왔죠. 하지만 이 이름은 재즈 기타리스트인 장고 라인하르트 이후 유행했으니, 남북전쟁 이전 흑인 노예가 이 이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죠. 다른 고유명사는 '만딩고'인데, 노예제도를 소재로한 통속소설과 그를 원작으로 한 영화 [만딩고]에서 가져온 이 이름은 흑인 노예들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격투기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타란티노의 창작으로, 실제로 만딩고가 이런 격투기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없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고증에 안 맞는다는 게 아닙니다.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져온 재료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죠.

타란티노 영화치고는 단선적인 이야기입니다. 흑인 노예 장고는 노예상인에 의해 팔려가는 동안 독일인 현상금 사냥꾼 킹 슐츠에게 구출됩니다. 슐츠의 목표는 장고가 얼굴을 알고 있는 노예농장 관리인들을 죽여 현상금을 챙기는 것이지만, 그러다가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출하는 작전에 참여하게 되지요. 브룸힐다는 지금 캘빈 캔디라는 농장주의 노예로 있는데, 둘은 만딩고 격투기의 선수를 사들이겠다는 핑계로 그에게 접근합니다.

그렇게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단 그렇게까지 피를 튀길 정도의 상황이 아니에요. 누가 봐도 훨씬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주인공들은 그 길을 안 갑니다. 타란티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어떻게 핑계를 만들려고 하고는 있는데, 그래도 그건 그냥 변명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타란티노 영화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당시 미국 노예 제도에 대한 강한 경멸에 바탕을 둔 야유입니다. 타란티노는 이를 전형적인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방식으로 다룹니다.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악당들을 설정하고 이들을 놀리고 괴롭히고 고문하고 죽이면서 즐거움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에 '위엄있는' 악당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캘빈 캔디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깊은 생각이 있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편견에 찬 유치하고 작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이 세계를 그렇게 일차원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선악구분이 분명한 영화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회색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특히 남부 노예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흑인 노예 묘사는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장고가 채찍질 당하는 노예 소녀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즐겁게 그네를 타고 노는 다른 노예들을 지나쳐야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악당으로 보고 있는 인물도 캘빈 캔디가 아니라 그의 늙은 노예인 스티븐이고요. 스티븐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인 노예제도 지지자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는 인물은 주인공 장고가 아닙니다. 그는 단순하죠. 그의 머릿속에는 나쁜 백인들을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는 생각 이외에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예제도의 희생자이고 복수자'라는 그의 위치도 미국 노예제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죽이려는 백인 농장주만큼이나 냉정합니다. 그는 그것을 연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기엔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럽죠. 그는 이 세상의 생태를 알고 거기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기한 킹 슐츠입니다. 우선 그는 독일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이에요.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서부극 직업을 택하긴 했지만, 그는 영화 내내 외국인의 시점에서 타란티노의 미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액션의 무대가 되는 캔디의 농장에서, 그래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한 이 세계의 논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 고뇌의 과정은 타란티노 영화답지않게 인간적이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암만 봐도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그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피칠갑과 수다가 넘치는 영화입니다. 러닝타임이 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건 타란티노의 영화이니, 타란티노 영화를 즐기는 식으로 보면 된다고 말하렵니다. 타란티노 영화치고는 단선적인 이야기라고 했지만 플롯보다는 그를 구성하는 중간중간의 장면들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게 더 재미있는 영화예요. 그것들이 재미있다면 좀 길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13/03/10)

★★★☆

기타등등
타란티노는 장고를 샤프트의 조상 이야기라고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감독: Quentin Tarantino, 배우: Jamie Foxx, Christoph Waltz, Leonardo DiCaprio, Kerry Washington, Samuel L. Jackson, Walton Goggins, Dennis Christopher, James Remar

IMDb http://www.imdb.com/title/tt18537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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