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무비 The Lego Movie (2014)

2014.02.08 18:14

DJUNA 조회 수:19651


레고사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사 상품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수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어왔습니다.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건 거의 없어요. 일단 전 그 작품들이 척 봐도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싫습니다. 자기네들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진짜 세계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캐릭터들도 맘에 안 들고요. 저에게 레고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이며,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그 장난감의 질감과 손맛, 무엇보다도 놀이의 즐거움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팔다리가 이상하게 휘어지는 레고 미니 피겨들이 나오는 요새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들보다 초창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단편들이 훨씬 레고답고 더 매력적이에요.

[레고 무비]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제가 언급해온 레고 영화나 시리즈들이 부정하고 피하려고 했던 것을 모두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레고 미니 피겨들은 모두 진짜 레고 같아요. 플라스틱의 질감, 자잘한 흠, 심지어 가느다란 주물자국까지 그대로 남아있지요. 움직이는 것도 딱 레고 미니 피겨 같고요. 이들이 너무 진짜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전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검색해봤습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스톱 모션을 결합한 거라던데 뭔 소린지 확신이 안 섭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스톱모션처럼 보여지는 것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일 겁니다.

영화의 비주얼은 압도적입니다. 이 영화는 미니 피겨와 탈것, 집 정도만 간신히 레고인 [닌자고] 시리즈 따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것이 레고예요! 파도, 불꽃, 연기... 하여간 공기와 물, 그리고 몇몇 결정적인 소도구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레고인 세상입니다. 레고 파도가 몰려들고 레고 폭발이 주인공을 향해 날아올 때, 영화는 거의 아방가르드 예술품처럼 보입니다. 할리우드 주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이런 표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영화의 이야기는 흔해빠진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스타 워즈]의 짬뽕입니다. 레고 미니 피겨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에멧이라는 건축노동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작업장에서 전설의 빨간 플라스틱 물체를 발견합니다. 그의 등에 딱 달라붙은 그 물체는 사악한 독재자인 로드 비즈니스의 압제로부터 레고 세상을 해방시켜 줄 신비의 무언가죠. 엉겁결에 쫓기는 신세가 된 그를 갑자기 도와주겠다고 나선 건 와일드사이드라는 레지스탕스 요원. 이들은 신비의 벽으로 막혀 있는 온갖 레고 세계를 오가면서 로드 비즈니스의 음모에 맞서 싸웁니다.

척 봐도 극장에서 틀어주는 광고영화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레고 무비]지요. 게다가 영화는 지금까지 레고가 만들어온 라이센스 상품들을 총동원해 등장시킵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DC 수퍼 영웅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 도시 시리즈... 눈썰미 좋은 레고 팬이라면 나오는 탈것이나 집의 부품 번호도 읊을 수 있을 정도죠. 레고 제품이야 그렇다고 쳐도 저 많은 라이센스 캐릭터들의 사용권을 따내려면 고생이 엄청났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레고 캐릭터와 세트들을 뒤섞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정말 제품 광고로 끝났겠죠. 중요한 건 영화가 거기서 멈추는 대신 이 이야기를 통해 레고 놀이의 진짜 매력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명서대로 부품을 조립하는 재미를 넘어서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재미요. 그 때문에 영화는 무척 레고다우면서도 설명서와 함께 파는 레고 세트 상품을 은근슬쩍 놀려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건 단순히 주제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전체에 반영됩니다. 이야기는 뻔한 패러디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순수한 스토리텔링의 재미가 있어요.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연출하는 사람의 쾌락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접근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최소한 최근 몇 년 동안 레고 트렌드를 따라왔고 레고의 손맛을 아는 미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전 자막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빙판 번역의 수준이 어떤지 모릅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던져지는 자잘한 인용과 언급들이 온전하게 전달되었을 거란 생각은 안 드는군요. 하지만 앞의 조건에 얼추 맞는 한국 관객들에게 [레고 영화]는 여전히 멋진 오락 영화가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14/02/08)

★★★☆

기타등등
당연히 레고에서는 이 영화의 캐릭터와 탈것들, 집이 나오는 세트를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컬합니다. 설명서 없이 미니 피겨 캐릭터들만 담긴 랜덤 벌크를 파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감독: Phil Lord, Christopher Miller, 출연: Chris Pratt, Will Ferrell, Morgan Freeman, Liam Neeson, Will Arnett, Elizabeth Banks, Craig Berry, Alison Brie, David Burrows, Anthony Daniels, Charlie Day

IMDb http://www.imdb.com/title/tt149001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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