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2014)

2014.12.12 23:08

DJUNA 조회 수:7762


영재는 '이삭의 집'이라는 가톨릭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다 있지만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니라, 스스로 집을 떠나 그 곳을 찾아갔죠. 나이가 먹어 시설을 떠날 때가 다가왔지만 눈치밥을 먹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영재는 시설 '엄마', '아빠'에게 최대한 아양을 떨고 신부가 될 생각이라고 허풍을 떨지만, 뒤로는 후원물품을 훔쳐 팔고 룸메이트를 배신하며 나날을 보내죠.

김태용의 [거인]은 가톨릭 환경에 대한 세속적인 영화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톨릭 환경을 세속적인 공간으로 그리는 영화지요.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믿음이 깊거나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영재는 당연히 믿음과 상관없이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탈출구로 이용하려 하고 있고, 이삭의 집 운영자들에게도 종교는 생계수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이냐면, 그건 아닙니다. 단지 종교적 메시지보다 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의 캐릭터와 행동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거죠.

보통 영재 나이 또래의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험악한 한국사회 속 십대 아이들의 특별한 고민을 대변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거인]은 조금 달라보입니다. 영재의 고민과 캐릭터가 은근히 친숙하다는 생각이 안 드셨나요? 신분상승의 길이 성직자가 되거나 군인이 되는 길밖에 없던 시절을 그린 유럽 소설 같지 않았나요? 영재에게 대한민국의 십대 남자아이라는 건 의외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 둘을 잘라내도 여전히 상당히 큰 부분이 남아요.

대부분 관객들은 [거인]은 교복 입은 십대 소년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제스처를 담은 탐미적인 포스터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했습니다. 좋은 미술 작품이에요. 하지만 과연 이 포스터가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영재는 고통 받은 십대 소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비한 소악당이에요. 종종 양심에 걸려 비틀거리긴 하지만 그는 생존을 위해선 뭐든지 합니다. 영화가 그를 위해 열어준 비교적 희망적인 열린 결말에도 불구하고, 전 그가 영화의 기대에 보답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도 가장 쉽고 위험한 길을 택할 것이고 그 때문에 주변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는 삶을 살 것 같단 말이죠. 그리고 그런 그의 초상을 충분히 감정이입하면서도 정확하고 냉정하게 그린 태도야 말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4/12/12)

★★★☆

기타등등
[거인]이 가톨릭 영화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건 영재의 과외 교사로 잠시 나오는 박주희 캐릭터 때문이겠죠.


감독: 김태용, 배우: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신재하, 박주희, 이민아, 장유상, 박근록, 다른 제목: Set Me Free

IMDb http://www.imdb.com/title/tt412059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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