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락 저널리스트인 닉 콘은 1976년, 뉴욕 매거진에 [Tribal Rites of the New Saturday Night]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빈센트라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뉴욕 디스코 문화를 풀어낸 이 기사는 곧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의 눈에 들어갔고 존 바담의 [토요일밤의 열기]의 원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작은 문제가 있다면 닉 콘의 기사가 거의 소설이었다는 거죠. 당시 뉴욕에 막 도착한 그는 그런 취재를 할 인맥도, 능력도 없었대요. 빈센트란 친구도 없었고 그와 친구들의 문화는 닉 콘이 알고 지내던 비슷한 부류의 영국 노동자 계급 남자들을 모델로 창작해낸 것이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짓말은 닉 콘이 직접 고백하기 전까지는 들통나지 않았습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그를 활용할 능력이 있다면 굳이 취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달까. 하긴 닉 콘의 빈센트가 당시 실제 뉴욕 젊은이들과 조금 다른 식으로 굴었다고 해도 그 차이는 곧 잊혔을 겁니다.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의 엄청난 성공을 통해 전세계 젊은이들은 모두 그 영화를 흉내내기 시작했으니까요.

댄스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토니는 브루클린에 사는 이탈리아인 청년입니다. 학교 졸업한 뒤로 그는 평일엔 페인트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주말이 되면 번 돈을 펑펑 쓰며 근처 디스코장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밤의 황제처럼 군림합니다. 어느 날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재능있는 춤꾼인 스테파니를 발견한 그는 몇 주 뒤에 있을 디스코 경연대회에서 파트너가 되어주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이 정도면 춤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의 모든 것이 갖추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나머지는 그냥 자동진행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댄스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비슷하게 극적인 상황에서 2등을 하거나 그렇겠죠. 바즈 루어만의 [댄싱 히어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토요일밤의 열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표면적으로는 뮤지컬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공식을 일부러 파괴하고 있죠. 토니와 스테파니는 실제로 가까워지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연애까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의 관계는 서툰 강간 미수까지 가죠. 각본은 스테파니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그릴 생각도 없어보이고요. 그리고 그들이 함께 참여한 디스코 경연대회 장면은 이런 부류 영화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안티 클라이맥스일 겁니다. 아니, 어떤 종류의 클라이맥스도 아니죠.

영화의 일차 목표는 뮤지컬 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1970년대 브루클린에 살았던 이탈리아계 노동자 계급의 남자아이들의 마초 문화가 어땠는지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결코 예쁘지 않습니다. 비쩍 마른 수탉처럼 디스코장을 누비고 다니는 존 트라볼타의 자기도취에 빠진 허우적거림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와 친구들의 여성혐오적이고 호모포빅하고 방향없이 폭력적인 헛짓거리를 보면 자연스럽게 불쾌감이 올라옵니다.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가톨릭 문화도 그들의 미래에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합니다. 결코 같이 어울려서 정신건강에 좋은 부류가 아니에요. 특히 여자애들이라면 더욱. 그 경우는 걱정할 게 정신건강만이 아니죠.

그나마 토니는 그럭저럭 미래가 보이는 청년입니다. 그건 그가 춤을 잘 추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자기가 잘 하는 분야에서 나름 자부심과 성실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영화에서는 승리의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댄스 대회 장면은 그가 속해 있는 마초 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폭발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그가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비교적 이치에 맞는 인간이 되어가려고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는 결말은 그래서 안심되는 구석이 있지요.

그러나 [토요일밤의 열기]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이런 내용들을 그리 많이 담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 비지스의 음악에 맞추어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긴 팔다리를 휘두르는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 트라볼타의 모습을 먼저 기억하고 다른 것들을 편리하게 잊어버릴 겁니다. 그만큼 춤과 음악, 그를 통해 전달되는 섹스 어필과 태도의 힘이 강했던 영화죠. 하긴 토니와 친구들이 빠졌고 도달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겠지만. (14/02/05)

★★★☆

기타등등
속편이 있어요. [스테잉 얼라이브]라고. 전 못 봤지만 많이들 최악의 속편이라고들 하죠. 그 영화에서 토니는 브로드웨이에 도전하는 댄서라고 하더군요. 하긴 재능을 살려야죠. 참, 이 영화의 감독은 실베스터 스탤론입니다.

고 진 시스켈이 참 좋아했던 영화라죠.


감독: John Badham, 출연: John Travolta, Karen Lynn Gorney, Barry Miller, Joseph Cali, Paul Pape, Donna Pescow, Bruce Ornstein, Julie Bovasso, Martin Shakar

IMDb http://www.imdb.com/title/tt00766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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