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 (2010)

2011.11.21 23:20

DJUNA 조회 수:12026


퀴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로, 같은 이름을 가진 커플을 등장시키는 게 있죠. 김수현의 [창피해]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자그마치 세 명이나 등장합니다. 윤지우, 강지우, 정지우. 단지 드라마 안에서 이들이 같은 이름을 써야 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종종 그렇듯,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고, 이름이 같다는 사실 역시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어떤 상징성이 있다고 해도, 자막이 올라가기 전까지 관객들은 거의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지우는 정지우입니다. 성격 까다로운 미대 교수로 기획 중인 전시의 모델을 찾다가 제자 희진의 누드 모델인 윤지우를 모델로 발탁합니다. 정지우와 윤지우, 희진은 전시용 비디오 작업을 하러 해변으로 가고, 거기서 윤지우는 자신과 세 번째 지우인 강지우가 나누었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야기를 액자 삼아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지우는 자기 옷을 입힌 마네킹을 직장인 백화점 옥상에서 떨어뜨려 모의 자살 실험을 하는데, 그만 그 마네킹은 소매치기인 강지우의 차로 떨어집니다. 강지우를 추적하던 경찰에 의해 수갑으로 묶인 두 사람은 곧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강지우는 이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영화의 구조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주인공 윤지우의 심리를 보다 상세하게 전달할 수 있고, 액자를 통해 이들의 드라마를 보다 느슨하고 자유롭게 들려줄 수 있습니다.


단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액자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첫 번째 지우인 정지우는 거의 영화에 나오는 자의식 강한 미술 교수의 캐리커처와 같아서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정지우의 작업 역시 윤지우의 이야기와 그리 잘 연결되는 것 같지 않아요.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이 액자가 '동성애 이야기'가 아닌 그냥 사랑 이야기를 하겠다는 영화의 의도를 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지우에 대해 알게 된 이 낯선 사람들은 당연히 '동성애'의 틀 안에서 윤지우의 이야기를 볼 수밖에 없고, 윤지우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동성애 일반'으로 떨어지는 거죠.


정지우와는 달리 윤지우와 강지우는 제대로 캐릭터가 잡힌 사람들입니다. 지나치게 유희적인 구석이 있긴 하지만 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끌 만한 독특함이 있어요. 특히 윤지우의 세상의 논리와 상식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요정과 같은 캐릭터의 묘사는 인상적입니다.


단지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분명한 기승전결을 통해 묘사되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꼭 그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지만요. 이들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서사구조 안에서 더 재미있을 종류예요. 이미 캐릭터와 이야기가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니까요. 여기 저기 채웠으면 좋았을 빈틈이 보입니다. 특히 전 강지우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어요. 정지우의 비디오 아트를 포기하고 이 아가씨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줄 생각은 없었던 건가요.


[창피해]는 완벽한 영화를 의도한 작품이 아닙니다. 반쯤 부서진 듯한 영화의 구조는 의도적이죠. 그리고 이 안에는 훌륭하게 캐스팅된 배우들이 연기하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인물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재미있죠. 여기저기 벌어진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고 할 수 있고. 단지 여전히 부서진 모양을 유지한다고 해도, 보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잔가지를 쳐냈다면 제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거죠. (11/11/21)


★★★


기타등등

이번에 개봉된 버전은 재편집본으로 저번 부산영화제 때 상영한 버전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감독: 김수현, 출연: 김효진, 김꽃비, 김상현, 서현진, 최민용, 우승민, 김선혁, 김중기, 다른 제목: Life is Peachy, Ashamed


IMDb http://www.imdb.com/title/tt184644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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