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2016)

2017.03.29 01:54

DJUNA 조회 수:10419


시어도어 멜피의 [히든 피겨스]의 원작은 마고 리 셰털리가 쓴 동명의 논픽션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머큐리 계획에 참여했던 흑인 여성들이에요. 캐서린 G.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흑인들은 백인이 쓰는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던 시기에 이들이 어떻게 나사의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는가... 사연이 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력이 부족해진 루스벨트 행정부가 흑인과 여성에게 문을 열었던 때부터 시작해야겠죠.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으시길. 영화는 짧은 프롤로그 이후 곧장 60년대 초로 건너 뛰니까요.

전형적인 실화 소재의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 부분에서는 양념을 치겠구나'라고 생각한 부분들이 정말 그대로 양념을 친 채 화면 위에 뜨더라고요. 꼼꼼하신 분들은 굳이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그 부분을 구별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영화가 거창한 연설과 제스처로 그린 캐서린 존슨(당시엔 재혼 전이라 고블)의 화장실 투쟁은 실제 세계에선 훨씬 조용히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화장실 문제는 당시 미국 남부 인종분리의 가장 비열한 현실이었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이 영화의 세 여성 주인공들도 실제 인물에서 스토리를 따왔지만 당시 재능있는 흑인 여성들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허구의 인물들에 더 가깝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지요. 한 마디로 큰 그림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차별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자신을 입증하려고 했던 재능과 운을 갖춘 소수가 당시 어떤 존재였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 했던 거죠.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 할까요. 정말 온갖 것들이 다 있는 영화입니다.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진지한 시대극이지만, 로맨스이기도 하고, 코미디이기도 하고, 과학기술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분노하지만 어떤 때는 태도를 확 바꾸어 관객들의 애정을 갈구하고요. 영화는 쉴 사이 없이 톤을 바꾸고 다양한 이야기 속을 오갑니다. 이런 잡탕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타협으로 떨어지기 쉽죠. 하지만 [히든 피겨스]는 놀랍게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균형을 잘 잡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재미있고, 과장된 드라마 속에서도 관객들이 기만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영화예요. 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고, 더 정확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보는 동안 너무 즐거워서 불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여러 모로 바람직한 좋은 대중영화입니다. (17/03/29)

★★★☆

기타등등
이 영화 속 흑인들은 대부분 실존인물들이지만 백인들은 대부분 허구의 인물들이죠.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감독: Theodore Melfi, 배우: Taraji P. Henson, Octavia Spencer, Janelle Monáe, Kevin Costner, Kirsten Dunst, Jim Parsons, Mahershala Ali, Aldis Hodge, Glen Powell, Kimberly Quinn, Olek Krupa, Kurt Krause, Ken Strunk

IMDb http://www.imdb.com/title/tt48463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7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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